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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Dec 24. 2019

정이란 무엇인가?

갑자기 서리가 내리면 연한 잎은 콩죽이 되고 진한 잎은 남아 그 강인함을 자랑한다. 인간 관계도 그런것 같다. 내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 내 주변의 인간관계가 서리를 맞은 것처럼 확실히 구분된다.


가족이라고 다 감싸 주는 것도 아니다. 자기에게 불편을 주거나, 기댈까 싶어 먼저 피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보험이나 교회 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일은 정신을 차리고, 헤쳐 나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내가 이혼을 하니 엄마는 동네 창피 한 걸 먼저 염려했었다. 아버지는 딸이 자존심 상할까 싶어 택시를 타고 다니라 하셨었다. 여동생은 자기가 속해 있던 사이비 종교로 나를 끌어들였다. 그 뒤로 그 종교에서 10년 넘게 호구 노릇을 했다. 오빠는 내가 어학연수를 떠날 때 돈을 보태 주었고, 다녀와서 아파트를 살 때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었다.


신기한 건 엄마는 세상 착한 사람이었고 희생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작 힘들 때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세상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담대하고 큰 안목이 있어 나를 놀라게 하셨다. 여동생은 똑똑한 듯한데 아직도 사이비 종교에서 못 벗어나, 자신의 성범자 교주를 신이라 우기며 산다. 오빠는 사업적으로는 성공을 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빵점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뭐가 진짜인지 가식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살면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나 또한 알 수 없는 사람의 일부일 것이다.


아버지는 내 이혼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늘 내 건강을 챙겨주셨지만, 우리 애들은 노골적으로 싫어하셨다. 큰애가 친정 집 문 앞에서 초인종도 못 눌러 오줌을 싼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나중에 내가 친구 결혼식에 간다고 하니 아버지는 걱정을 하며 얘기하셨다. 이혼한 애가 친구 결혼식에 가면 친구 부모님이 싫어하신다고. 가지 말라고.


이혼은 나를 철저하게 독립시켜주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재 정립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누구도 자기를 희생해 가며 나를 지지해 줄 사람은 없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체면이나, 돈에 손실을 감수하며 도와줄 사람은 없다는 걸 배웠다. 경제적 독립과 인간관계의 독립에 더욱 기를 쓰게 된 계기였다.


어려움을 겪으며 인간관계에 재정비가 한차례 일어다. 재미있는 건 재혼을 하면서 또 정리가 되었다.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 것이다. 재혼을 하면서 다 큰 우리 딸이 성폭행을 당할까 염려하는 말을 대 놓고 하기도 했다.


아들의 취업에 부모의 이혼과 재혼이 걸림돌이 될 거라는 얘기도 들었고, 딸의 혼사에 장애가 될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자식의 장래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내 행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여자가 된 것이다.


내가 혼자 살 때 자주 만나서, 시부모와 남편 흉을 보며 눈물을 찍어 내던 친구도 연락을 뚝 끊었다. 나는 내가 편해서 속 얘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자기보다 불쌍해서 나에게 얘기하며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늘 불쌍하던 내가  좀 행복해 보이니 불편한 사람이 된 것이다. 불쌍한 사람은 맨날 불쌍만 해야 하는데 말이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 관계는 굳이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다. 반대로, 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어떤 사람인지 점검을 해 볼 필요도 있다. 내가 힘들게 할 수도 있고, 내가 경계의 울타리를 자꾸 낮춰서 그들이 내 영역을 침범하도록 허락했을 수도 있다. 내가 애당초 울타리를 확실하게 말해 주지 않은 것은 나의 욕심이나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혼으로 두려워할 때 여동생이 사이비 종교를 가지고 내 인생에 침범하도록 둔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우리 아이들과 내가 친정에 가면 싫은 티를 낸 것은 아버지의 경계를 내 표현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당시에는 서러웠지만 기를 쓰고 독립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인간관계를 최소화하고 산다. 내가 사랑할 사람,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만 시간과 마음을 쏟는다. 정이란 말로 애매하게 걸쳐진 관계의 거품을 확 걷어내니 살기 편해졌다. 나쁘기만 한 사람도 좋기만 한 사람도 없다. 내 상황에 따라 밉기도 했다 좋기도 할 뿐이다. 미운 사람은 맘 놓고 미워하다 보면 덜 미워지기도 하니 말이다.  내 전남편처럼 말이다.


그런 고로, 최대한 이해하며 사랑하며 살아볼 작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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