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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Jan 22. 2020

평화롭고 단란한 콩가루가족

불쌍하면 돈으로 주세요.

재혼을 한 후 여름 방학이면 남편의 고향마을인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지간히 시골이라 마트에 한 번 가면 남편의 사촌이나 동창 친구를 꼭 만난다.


 남편의 고향 친구 집에 며칠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 친구 부부 둘 다 남편과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는데, 와이프는 세 번째 결혼이었고 남편은 첫 번째 결혼이었다. 와이프인 스테파니는 두 딸이 있는데, 두 딸의 아빠는 각 각 스테파니의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이다. 그러니까 두 딸의 아빠가 달랐다.


 우리가 거기 머물렀을 때 두 번째 딸 애슐리가 대학교 옆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애슐리의 친아빠가 트럭을 가져왔고, 스테파니의 세 번째 남편과 나란히 짐들을 옮겼다. 이혼한 두 번째 남편과, 현재 살고 있는 세 번째 남편이 웃으며 상자를 맞잡고 트럭에 싣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그냥 마음이 자유로와 졌다. 나와 딸은 스테파니의 태연한 표정에 놀라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해 했다.  전남편, 현 남편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짐을 옮기는 모습에 어리둥절한 것이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니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혼을 했지만, 딸이 이사를 한다니 도와주러 온 친아빠이고, 새아빠가 딸이 이사를 나가는 데 짐을 옮겨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인상을 쓰며 기분 나빠야 할 이유가 없는 사이인 것이다.


큰 딸은 간호사로 일을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며칠 후 여름휴가를 떠났다. 친아빠, 즉 스테파니의 첫 번째 남편이 있는 도시로 여행을 간 것이다. 잘 도착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영상통화를 이 쪽에 있는 온 가족과 했다. 그쪽은 친아빠가 결혼을 해서 낳은 동생과 이쪽은 친엄마, 동생이 돌아가며 안부를 나누었다. 덩달아 우리까지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와 딸은 또 충격을 아니 받을 수 없었다. 참 평화롭고 단란한 콩가루 집안인 것이다.


스테파니와 찍은 사진이 이렇게 얼굴이 대문짝 만한거 밖에 없어서




재혼을 하고 얼마 안 되어 남편이 근무했던 학교의 선생님 댁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딸이 같이 갔었다. 선생님의 와이프 분이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셨고 우리는 즐겁게 밥을 먹고 대화를 한 후 그 집을 나왔다.


집으로 오는 내내 딸의 표정이 좋지 않아 왜 그러냐고 물었다. 딸은 그 선생님 부부가 자기를 매우 측은한 눈빛으로 대했다는 것이다. 기분이 너무 나빴다며 나에게 안겨 우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대목에서 기분이 나빴는지도 눈치를 못 챈 무심한 엄마라는 죄책감이 생겼다.


한 편으로는 그 부부가 단순히 친절하게 대접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자라면서 친척이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불쌍한 취급을 많이 받았다. 가엾은 눈빛에는 특화되어 감지력이 뛰어났다. 그 예민한 감수성도 결국 부모 탓이니 또 마음이 쓰렸다.


사람들이 모이는 명절이다. 그립던 가족이 모여 묵은 회포를 푸는 좋은 날인데, 왜이리 전투력을 다지는 사람이 많을까? 아예 안 가려는 사람도 많다. 명절을 기다리는 사람은 세배돈을 받을 아이들이나, 연휴를 기다리는 어른 남자뿐인 것같다.


일년 내내 불쌍한 취급을 받는 이혼녀가 일년에 두번 부러움을 받는다. 바로 명절. 나의 명절은 별로 이혼녀 답지 못했다. 엄마가 환자로 6년을 누워계셨고 돌아가신 후로는  더 쓸쓸한 명절이었다. 전남편의 집에서 그 집 조상을 위해 전을 부치는 건,몸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마음이 억울했다. 심지어 거긴 며느리들도 많아서 일손이 부족하지 않았건만, 억울함은 피로감을 배가시켰다.


이혼녀가 되어, 엄마가 안 계신 명절을 준비한다는 것은 눈물을 삼키며 하는 극기훈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억울함은 없었기에 할 만했다. 친척들이 방문하면 심지어 내가 이혼을 하고 집에 있어줘서 다행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명절에 집에 가기 싫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1. 일해야 하는 며느리

2. 취준생

3.이혼한 사람들

4.재수생

5. 친부모와 살지않는 아이들

6.결혼하지 않은 장성한 남녀

7. 아이가 없는 부부

8.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

....


명절에 모여 누군가를 불쌍한 취급을 해서 내가 더 나은 위치임을 과시하고 싶다면 돈으로 주는 건 어떨까 싶다. 그렇다면 불쌍한 취급 쯤이야 잠깐 당해 줄 수도 있다. 이혼해서 시댁에 안가도 좋겠다고 한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말했었다. 그럼 너도 이혼하라고. 명절 날 오후에 우리 집을 방문하는 먼 친척벌 며느리에게는 "이 시간에 여길 왜 오세요? 친정엘 가야지." 했었다.


말하는 사람도 조심을 해야겠지만, 그 입은 내가 단속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번 명절에는 내가 받아칠 말을 준비해 보자.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법도를 따지 신다면, 콩가루 집안이라도 화목한게 더 좋아요. 곯병 드는 것 보다는. 재수하는 학생이나 취준생은 이것 저것 물어오는 어른들께 돈을 달라고 해 보자. 경제적으로 힘들다며 엄살을 쓰면서.


성공한, '정상적'인 사람만 명절을 즐거워 한다면 '비정상'적인 많은 사람은 그 날이 힘겨울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의 상황은 잠시 뒤로 밀어 놓고 환대를 해 주면 좋겠다.함께 나눴던 어릴 적 추억을 꺼내어 웃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이 되면 명절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만난 스테파니 가족처럼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집중하면 된다. 남눈에 신경쓰며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지 않으면 된다. 화목하고 따뜻한 콩가루가족이 되어도 살 만하다.


위로의 말보다 현금을


https://brunch.co.kr/@red7h2k/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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