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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Feb 18. 2020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는  삶의 순간들

20대 딸도 하지 않는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건 그림을 그리기 시작 한 후부터 였다. 인근 도서관에서 하는 수채화 일러스트 수업을 받으니, 일주일에 한 개씩 그림이 완성되었다.  친구나 남편도 처음 몇 번은 반응을 해 주더니 나중에는 건성으로 흘낏 보고 영혼 없이 칭찬을 했다. 쌓여가는 그림을 자랑하기 위해 인스타에 사진을 올렸지만 별 재미를 찾지는 못했다.  저장하는 차원에서 계속 올려놓았다.


내 사진을 올리다 보면 남의 사진을 한 번씩 보기도 한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찍은 사진,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우며 찍은 사진,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닌 평범한 스무디 사진을 올려놓은 것도 많다. 자기가 요리를 한 음식이나 아이의 예쁜 모습은 그 순간이 얼마나 자랑스러울지 공감이 된다. 하지만, 자랑스러워할 포인트가 보이지 않는 사진들은 왜 전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의 인스타 사진을 보며 그 사람의 근황을 알게 된다. 그러다가 나는 뭐 하고 살았는지를 돌아본다. 휴대폰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을 훑어봐도 뒷산에서 찍은 풀꽃이나 딸에게서 받은 딸의 사진들이 전부이다. 그럼 나는 뭘 먹었고, 어디에 갔었지? 한 달 내내 일만 하는 무료하고 단순한 삶을 산 건 맞다. 그래도 분명히 장을 봐다가 요리도 했을 것이고 외식도 했을 것인데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무의미한 순간들 뿐이었나.


내가 언제 감격에 겨운 사진을 찍는 지를 생각해 보았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평범해 보이는 사진들도, 찍는 사람은 그 순간이 분명 기쁨과 감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기념을 하고 싶은 나의 순간들은 언제 였을까? 한 달 동안 인스타라는 일기장에 적을 만한 사진 한 장 없는 생활이 참으로 건조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인스타의 평범한 사진들은 각자의 기념할 순간들인 것이다. 그 순간이 대단히 특별해서가 아니라, 특별하게 바라봐 주면 특별해지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감동에 못 이겨 찍은 사진이 없는 것은, 생활이 무료해서가 아니었다. 감동을 찾아내는 눈이 건조했던 것이다. 사소한 순간에도 놀라워하며 즐거워하는 감성지수가 낮았던 것이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평범한 사진을 보며, 사진의 주인을 괜한 외로움 환자로 평가한 나를 반성했다. 사진을 찍은 본인에게는 커피가 나오는 순간도  파스타가 나오는 순간도 기쁨으로  충만한 삶의 한 조각이었던 게다. 작은 기쁨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는 애정 어린 사진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요리를 해 놓고 나를 부르는 순간은 언제나 감격스럽다. 내 인생은 맨날 다큐인 줄 알았건만 이렇게 로코인 날도 있구나 싶은 순간이다. 같은 사진이 반복되어 쌓일지언정 카메라 저절로 켜진다. 내 삶이 재미없는 소설 같아도 가끔은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고픈 문구가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밑줄을 그어 준다.






일요일이면 남편은 일주일치 점심 요리를 몇 가지 해 둔다. 나는 남편의 요리는 배우고 싶지 않고 먹는 법만 배운다. 남편이 하는, 계절마다 다른 신기한 요리들도 내게는 기념하고 싶은 조각들이다.




아침마다 오르는 뒷산에서 만나는 꽃들은 언제나 재롱스럽다. 풀과 꽃을 몇 줄기 꺾어다 책꽂이에 마련한 꽃자리에 둔다. 나는 얘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뻐서 인사를 하고 웃음을 짓는다. 봄이면 산수유 꽃, 진달래를 꽂는다. 여름이면 도라지 꽃, 가을이면 밤송이를 꽂아 둔다. 꽃자리에 꽃이 없으면, 시계자리에 시계가 없는 것만큼이나 허전하다. 휴대폰 갤러리에 가장 많은 사진이 들꽃 사진인 걸 보면, 꽃을 만날 때마다  카메라를 멈출 수 없었나 보다.




카메라는 참 힘이 세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보다 더 주인공은 카메라를 든 사람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에게는 처음 봤어도 웃음을 준다. 언젠가 어느 전시회에서 엄청 비싸 보이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 있었다. 낯선 아저씨 앞에서 주책맞게 웃고 있는 스스로에 놀랐다. 그리고는 사진을 보내 준다며 전화번호를 묻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이건 뭐지, 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힘을 발휘한다.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지만, 피사체 입장에서도 최대한 예뻐 보이려는 노력을 꺼내게 만든다.




여행을 가서 감탄을 하며 찍은 풍경사진은 한 번씩 꺼내 볼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일으켜 준다. 여행에서 먹은 음식, 걸었던 거리도 사진을 보면 새록새록 냄새까지 살아난다. 우리 삶의 매 순간을 여행하는 들뜬 가슴으로 보는 법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아이가 초콜릿을 입가에 묻히며 먹는 모습, 혼자서 책에 빠져서 읽는 모습, 인라인을 휘청거리며 타는 모습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남들이 보면 별 것도 아니지만 엄마의 눈에는 매 순간이 경이로운 작품사진일 것이다. 매 순간을 경이롭게 보는 그 마음으로 내 삶을 바라봐야겠다.  


감탄하며 카메라를 켜는 순간이 더 많아져야 더 웃고, 기념하고 추억할 테니 말이다.




Hey, you are my camera. you always make me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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