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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Apr 17. 2020

이 시골에 뭐하러 오겠어?

국가가 주는 자존감


서산이라는 서해안 마을에 산 지가 3년이 지나고 있다. 30분만 나가면 바다가 있는 곳에 산다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고향 동네인 경북에서 친구가 오면 신나서 바다 자랑을 한다. 하지만 토박이 주민들은 경북에서 왔다고 하면 하나같이 안쓰러워한다. 어쩌다 이 시골까지 왔느냐는 것이다.  <생생 정보통>, <6시 내 고향> 같은 프로그램에서, 굴밥이나 게국지를 소개하는 바로 그 바닷가 동네에 산다는 게 내 자부심이다.


한국에 온 원어민 강사를 보는 눈도, 내가 서산에 왔을 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실패했으니 한국에 오는 것 아니겠어? 하는 선입견이다. 함께 근무하는 원어민 강사들을 보면 물론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 강사로 온다. 최근에 오는 젊은 원어민 강사는 한국어를 공부했고 소주를 좋아해서 한국으로 오는 강사도 있다. 자기의 고향에서 실패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이모저모 따져 본 후의 선택인 것이다.


왜 이런 시선이 생겼을까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내가 사는 지역을, 나라를 부끄러워하는 패배감에 있다. 내가 사는 곳을 하찮게 여기니 이사 오는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 혹은 서울이 아닌 시골에 사는 것은 실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라여기는 열등감을 가지니, 미국이나 영국 같은 큰 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를 떠나 한국으로 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구의 백인 우월주의적 사고를 우리도 그대로 받은 것이다.


내가 재혼을 결정할 때 가족들과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 딱 그거였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흑인이니 정상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아버지에게 재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결혼할 사람이 미국에서 온 흑인 원어민 강사라고 하니 아버지는 걱정이 늘어지셨다. 지금도 아버지는 전화만 하면, 고만 다 집어치우고 상주로 오라고 하실 정도이다. 남편이 돈이 없는 사람인 것 팩트이니 아버지의 걱정이 영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나를 불쌍하게 볼 줄은 몰랐다.


코로나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선진국이라 여기던 나라의 실상을 보여 주었다. 특히나 미국은 의료 민영화로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과 병원비 두려움까지 있다. 며칠 전 뉴스에 무료 음식을 받기 위해 6천대의 차들이 줄 서있는 모습이 나왔다. 이 모습이 세계 최강의 미국 모습이라는 것을 자국민도 못 믿는 현실이라고 한다. 요즘 남편은 아마존에서 식료품을 주문해서 며느리와 손녀의 집으로 배송을 시켜 준다. 아들 내외가 수입이 없어지고 손녀는 학교를 못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확진자가 생기는 초기에, 허상이라고 속지 말라고 했었다. 남편은 미국 정부에 분노하며 온라인으로 장을 봐주고 있다.


예전에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든 생각은 병사 하나를 구하기 위해 저렇게도 애를 쓰는구나,였다. 온 국민이 생방송으로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보았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세월호를 보면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생각하면서 분노했었다. 몇 년 전, 남편과 여행을 하면서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항공기를 탄 적이 있었다. 수리를 하느라 제시간에 출발을 하지 못 했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공구 박스를 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리에 앉았을 때 남편에게 물었다. “사고 나면 우리 어떡하지?” 했더니, 남편은 미국인이 한 명이라도 타면 미국 정부에서 끝까지 구하러 올 것이니 안심하라고 했다. 항공기 사고에 구하러 온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국가가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었다.


지금 우리는 국가에 대해 새로운 신뢰와 애정을 만들어 간다. 내가 아프면 국가가 치료해 준다는 믿음은 참으로 푸근하다. 돈이 많은 사람만 치료를 받고 돈이 없으면 치료 한번 못 받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해방되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선진국이라 믿었던 나라에서도 진단 키트를 사러 오고 대처 방안을 배우겠다는 상황이다. 우리가 알던 우리가 아닌 것을 알았다.


유럽의 나라들을 여행하며 웅장한 건물에 압도되고 여유로운 휴가를 부러워했다. 미국의 토론식 수업이나 언론의 자유를 동경했다. 이제 우리도 양성평등이나 언론 평등 보편적 복지 같은 앞선 담론들을 진지하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북유럽도 부럽지 않은 나라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쉽게 내뱉던 “한국인은 안돼, 양은 냄비 근성이 있어서 안돼.” 라는 패배주의적 말은 듣지도 하지도 말아야 겠다.


국가가 울타리가 되어주니 코로나로 수입은 줄었어도 마음은 따뜻해졌다. 국가가 자존감을 살려주니 훨씬 불안감이 줄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제 세월호 진실만 제대로 밝혀주면 좋겠다.


나즈막한 산, 흩날리는 꽃도 살가워 보이는 "춘심 "


https://brunch.co.kr/@red7h2k/81


https://brunch.co.kr/@red7h2k/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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