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랭이 처벌을 위한 도구를 정말 신중하게 골랐다. 그리고 지난주 가위로 잘라내다가 너무 손아귀가 힘들어서 구매를 진행했다.
미니 톱낫을 샀다. 주중에 배송이 왔다.
날이 한 뼘이 안되고 손에 잡으면 쏙 들어온다. 칼날은 좀 무서워서 톱형식으로 되어있는 날을 골랐다. 재질은 스텐. 그립부는 우드에 월넛색의 바니쉬가 칠해져 멋스러웠다. 아주 고급지다.
아침에 소낙비가 스콜처럼 내리다 그쳤다. 그 길로 텃밭으로 향했다.도착하자마자 톱낫의 거풀을 벗기고 바랭이를 2번 두둑부터 처단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외곽에 옮겨 심은 들깨는 1/3이 죽어있었다. 외곽에 양분이 없는 진흙이기도 하고, 옮겨 심을 때 뿌리흙이 털린 것들도 있었고, 생존율을 고려하지 않고 1 뿌리씩만 심기도 했다. 최대한 옮겨 심지 않기로 다시 다짐했고, 들깨를 외곽에 다시 옮겨 심을 때에는 3 뿌리씩 뿌리흙을 잘 보존해서 옮겨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로즈메리도 장마에 과습 되어서인지 절반이 죽어버렸다. 파종하고 한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던 로즈메리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매번 텃밭에 갈 때마다 가만히 바라보고, 향기를 맡으며 힐링하곤 했는데.. 남은 아이들을 제발 살아남기를 바란다.
슬픈 소식은 뒤로하고 일단 오늘은 바랭이를 처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꽃대가 목질화된 상추들의 꽃대도 제거하며 가을 파종을 준비하는 것이다.
톱낫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톱낫과 나는 물아일체가 되어서 바랭이를 아주 빠른 속도로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2 두둑, 3 두둑, 4 두둑...
4 두둑 중반부터가 메인이벤트였다. 이제는 바랭이의 본거지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그치길 바랐지만 점점 거세졌다.
비를 맞으며 아주 밀식된 바랭이를 처단하는데 좀처럼 4 두둑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직 최종 보스인 5 두둑이 남아있는데 말이다.
내 머리카락은 흑인 직전의 곱슬이다. 비 몇 방울에 내 두피가 젖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두피가 축축해졌다. 팬티까지 젖기 직전이었다. 아니 이미 습기는 느껴졌다.
엄마에게 포기를 선언했다. 그만 집에 가자고. 엄마는 모자를 써서 그런지 아쉬워했지만 약 10분간의 징징댐으로 집에 가는 차에 탈 수 있었다.
패배만 기억할 수는 없다. 4 두둑에서는 패했지만 오늘은 예상보다 선전했다. 2 두둑과 3 두둑을 완전히 정리해 버렸다. 고급스러운 미니톱낫에게 영광을 돌린다.
집에 돌아와서는 텃밭에서 수확한 미니당근과 방울토마토로 태국식 샐러드인 쏨땀을 만들어 먹었다.
저녁에는 텃밭 방울토마토와 마늘에 엄마 지인에게 받은 가지, 호박을 더해서 라따뚜이를 해 먹었다.
텃밭을 하며 수확한 작물로 요리를 해 먹을 땐 정말 뿌듯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요리를 정말 좋아하지만 재료를 사야 하는 것 때문에 항상 갈등했었다. 요리를 해도 재료를 아끼게 되고, 그러다 냉장고에서 야채가 썩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텃밭을 하고 특히 금년도에 엄마가 텃밭 하는 지인들과 교역을 한 이후로 냉장고가 풍년이고, 짠순마인드로 인해 봉인되어 있던 나의 요리열정이 살아나고 있다. 매일 신메뉴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