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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페페 Aug 16. 2024

전쟁의 서막

잡초 중의 잡초, 바랭이

7월 초 내내 장마가 왔다.

첫 비가 내린 후 밭에 갔을 때 고랑이 진흙밭이 된 걸 보고 놀라서 물 빠지는 구멍을 더 크게 만들고, 그 구멍 근처로 고랑을 추가로 냈다. 몸살이 날 뻔했다.

장마가 끝난 7월 중순, 텃밭을 방문했다.

그리고 너무나 충격이었다.

그나마 자잘하게 자라던 바랭이(잡초 종류) 들이 아주 증식해서 씨앗을 새로 심은 자리들까지 다 침범해 있었다.


근처에 갔다가 뱀이나 땅벌이라도 살까 봐 두려울 정도였다.


자연농법을 찾아보다 무경운 농법을 알게 되었다. 잡초와 함께 작물을 키운다길래 나도바랭이가 작을 때 그 옆에 씨앗을 꽤 심었다. 그런데 새싹은 없고, 바랭이만 온 밭을 점령했다.

우리 밭은 울타리도 없다. 칠 돈이 아깝기도 하지만, 고라니가 먹고 남은 걸 먹으려고 하는 것도 있다. 


약도 안치니 벌레 먹은 잎사귀도 많다. 그래도 벌레 먹고 남은 걸 먹으면 되니 문제없다.

그러나 이것 다 작물이 잘 자랐을 때 얘기다.

잡초 녀석들 때문에 벌레랑 고라니 먹을 것도 없어질 판이었다.

상생을 하고 싶은 건데, 바랭이가 탐욕을 부린다면 처벌하는 것이 내 원칙이다.


하지만 자연농법과 무경운 농법에 대해 찾아보았을 때, 식물의 뿌리에는 우리 몸 내 장의 마이크로 바이옴처럼 특유의 미생물이 살고, 그들이 근처의 유기물을 통해 원하는 양분을 흡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뿌리 덕분에 토양의 구조가 성해지고, 공기와 물이 잘 통할 수 있어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식물의 뿌리를 뽑지 말라고 하였다. 남은 뿌리는 유기물로서 퇴비화되어 근처 식물의 양분이 된다고도 하였다.

그럼 바랭이를 뽑을 수는 없다. 사실 뽑기도 버겁다.

그래서 열심히 잘라냈다. 고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연장은 너무 별로였다.

우드카빙할 때 쓰던 칼로 열심히 잘라내는데 힘만 들고 잘 잘리지를 않았다.

몇 시간 동안 바랭이와 씨름했지만 밭을 점령한 바랭이를 처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무나 좌절스러웠다.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하던 텃밭고수님들의 말이 떠올랐다.

비료를 좀 주지, 멀칭을 하지.

나는 뭣도 모르면서 고집을 피우는 것일까?

작물의 성장속도도 너무 느리다. 그냥 흙도 아니고 논을 덮기 위해 아무 데서나 가져온 죽은 흙일 텐데,

얘가 살아나긴 할까?


지친 몸과 오만가지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어떻게 텃밭을 가꿔야 할지 몇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

작물을 예쁘게 옮겨 심을까? 두둑과 이랑을 좀 더 파서 올려야 하나?

바랭이는 무조건 처벌해야지.

다이소에서 원예용 가위를 사서 뿌리 빼고 다 잘라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자연농법도 조금 더 검색해 보았다.

비로 인해 겉흙이 침식되는 것도 자연농법에는 좋지 않았고, 그 말은 흙을 그냥 파지 않아야 한다는 거였다.

두둑과 고랑은 만지지 말아야지.

바랭이를 다 잘라서 말려서 멀칭을 꼭 해야지.

비닐멀칭은 안 하더라도 유기물멀칭은 꼭 해야 잡초가 번성하지 않고 유기물을 미생물이 먹어서 양분으로 순환되기도 하고, 수분도 잘 포집할 수 있다고 했다.



자연농법이 쉬웠으면 누구나 자연농법을 했겠지.

시간도 걸리고 시행착오도 많을 일이 맞다. 


그리고 품에 비해 수확량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돈은 많이 쓰기 싫고, 자연 그대로가 좋고, 건강염려증이니까. 이대로 밀고 나간다.


토요일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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