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늦가을에 심어 조그마한 상추와 루꼴라, 고수가 겨울에 얼어 죽을까 봐 몇 뿌리 뽑아와 집에서 수경재배를 시도했었다.
노지에서 소멸된 텃밭자아를 살리기 위해 고추냉이 모종도 몇 뿌리 집에서 키우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고추냉이에 진딧물이 미친 듯이 생성되어서 벌레들이 싫어한다는 고수까지 잡아먹는 상황이 되었다.
고추냉이 5주 중 3주가 죽어버렸다.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텃밭에 갈 수 있는 봄이 왔다.
수경재배를 했든 흙에서 키웠든 일단 집에 있던 모든 초록이를 데리고 텃밭으로 향했다.
3월 초 즈음이라 밭이 아직 얼어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일단 한뿌리 한뿌리 옮겨 심었다.
고추냉이는 더위도 싫어하고, 수분이 없으면 안 되는 아이라서 배수로 제일 끝쪽, 물이 자주 고이는 곳에 물이 흐르는 데는 방해되지 않도록 주변을 깊게 파고 작은 자갈들을 채운 후 심어줬다.
그늘진 곳을 좋아한다기에 근처에 있던 건초가 된 잡초로 위를 덮어주었다.
잘 살기를 바라며 매주 텃밭에 가서 그들의 생사를 확인했다.
엄마와 밭을 나눈 후 처음 심은 식물들이라 애착이 더 컸을 듯싶다.
상추, 고수, 루꼴라는 수경재배하던 것들인 데다 서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기라 그런지 밭에 옮겨 심은 것들 중 반 이상이 죽어버렸다.
하지만 강한 녀석들만 살아남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수경 재배하던 때는 상추가 웃자라고, 아주 부드러웠는데 확실히 노지에서 자라니 모양부터 재질까지 다 달라졌다.
고수와 루꼴라는 나무처럼 자라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냥 씨나 받아야지 하고 가만히 놔뒀다.
고추냉이는 정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살아있었다.
진딧물은 다 죽었고, 대신에 달팽이가 잎을 아주 많이 뜯어먹고 있었다.
달팽이는 미안하지만 다른 곳으로 보냈다. 죽이진 않았다.
고추냉이 근처에 겨우내 집에서 피웠던 꽃에 달린 고추냉이 씨앗들도 뿌려줬는데 새싹이 나진 않았다.
그리고 크기가 커지지도 않았다. 그냥 살아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갈 때마다 물을 부어주었다.
이제 정말로 내 밭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생겼으니 봄에 심을 씨앗을 구매했다.
추워도 심을 수 있다고 되어있는 대파와 완두콩, 라벤더를 심었다.
아직 모종을 살 마음은 없어서 모두 씨다.
완두콩은 지주대를 안 해줘도 된다는 품종으로 한 두둑에 심었다.
대파는 다년생인 부추가 있어 쓰기 애매한 두둑에 마구 흩뿌렸다.
라벤더는 씨앗을 사며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는지 모른다.
라벤더가 피면 라벤더에서 기름을 어떻게 짤지 구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라벤더는 새싹하나 올라오지 않았다.
씨를 뿌릴 때 물을 묻혀서 뿌리는 게 좋다 하여 그리했는데 그것이 원인이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도 라벤더를 뿌렸던 밭은 마구 뒤집지 못한다. 혹시나 하나라도 나올까 봐.
그 이후로도 많은 씨를 심었다. 고추, 당근, 방울양배추, 비트 등등.
비료를 사지 않은 대신 작년부터 텃밭에서 나오는 잔여물들과 음식물쓰레기로 퇴비를 만들고 있었다.
퇴비를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며 화학비료의 단점을 조금 알게 되었다.
퇴비는 유기질 비료이지만 화학비료는 무기질 비료라서 토양 미생물에는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기억이 난다.
이제 막 완두콩이 꽃이 피고, 대파가 실파처럼 자라나 올 때 임신이 되었다.
임신을 알게 되자마자 입덧이 너무 심해져서 거의 누워만 지냈다.
회사는 겨우 가서 겨우 오고, 그마저도 힘들어 연차를 아주 많이 썼다.
당연히 텃밭도 못 갔다. 훌쩍 시간이 지나 6월 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