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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첫 해

시행착오들

by 홍페페

텃밭을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이끌림 이상의 열정은 없었다. 그리고 텃밭에 돈을 쓸 여유도 없었다.
그저 어디서 본 대로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다이소에서 산 씨앗을 흩뿌렸다.

많은 사람들이 비닐 멀칭을 한다던데, 나는 비닐을 사기도 싫었고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옆 텃밭 사람들은 지나가며 한 마디씩 조언을 건넸다.
“비료가 부족하다.”
“씨를 뿌리지 말고 모종을 사서 심어야 한다.”

하지만 큰 밭에 비료를 다 뿌리자니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모종도 씨앗보다 훨씬 비쌌다.
‘그냥 씨 몇 백 개 뿌려서 자라는 것만 먹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허허 웃었다.
경험자들의 조언을 듣고는 “재미로 하는 거예요~” 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 엄마의 열정은 점점 불타올랐다.
내가 밭을 관리해보려 하면 이미 엄마가 씨를 뿌려놓아 건들지 말라고 했다.
무슨 씨앗을 뿌렸냐고 물으면 “뭐였더라?” 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점점 내 입지는 줄어들고, 흥미도 함께 사라졌다.

나는 다시 나만의 방식을 찾고 싶었다.
비닐 멀칭 대신 풀 멀칭을 해보기로 했다.
텃밭 주변 잡초를 베어 말려 흙 위에 덮어주고, 밭의 돌을 골라내 주변에 돌담을 쌓았다.
원래 논이었던 곳이라 흙 질은 좋지 않았고 돌도 엄청 많았다.

풀 멀칭을 해놓으니 오이가 꽤 잘 자랐다.
하지만 벌레들이 건초더미에 몰려들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치우라고 소리를 쳤다. 결국 건초더미를 가쪽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흙이 쉬는 동안 나도 잠시 쉬며 생각했다.
나는 텃밭을 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이 밭은 내 밭이 아니라 엄마 밭이 되어 있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가꿀 수 있어야 더 재미있을 텐데.

그래서 엄마에게 밭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엄마는 별 고민 없이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24년 봄, 나만의 텃밭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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