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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봄의 텃밭

새로운 시작

by 홍페페

작년 겨울, 늦가을에 심어둔 상추와 루꼴라, 고수가 얼어 죽을까 봐 몇 뿌리를 뽑아 집에서 수경재배를 시도했었다.
노지에서 소멸된 텃밭 자아를 살리기 위해 고추냉이 모종도 몇 뿌리 들여와 키우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자 고추냉이에 진딧물이 미친 듯이 생겼다. 벌레들이 싫어한다던 고수까지 갉아먹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고추냉이 다섯 주 중 세 주가 죽어버렸다. 대책이 필요할 때, 마침 텃밭에 갈 수 있는 봄이 찾아왔다.
수경재배를 했든 흙에서 키웠든 집에 있던 모든 초록이를 데리고 텃밭으로 향했다.

3월 초, 밭에는 아직 얼어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한 뿌리씩 옮겨 심었다.
고추냉이는 더위를 싫어하고 수분이 부족하면 안 된다기에 배수로 끝쪽, 물이 고이는 곳에 심었다.
물이 흐르는 길을 막지 않도록 주변을 깊게 파고 작은 자갈을 채운 뒤 심고, 그늘을 만들어 주려고 건초가 된 잡초를 덮어 주었다.

잘 살아주길 바라며 매주 텃밭에 가서 생사를 확인했다.
엄마와 밭을 나눈 후 처음 심은 식물들이라 애착이 더 컸다.
하지만 상추, 고수, 루꼴라는 수경재배하던 것들이라서인지, 그리고 아직 서리가 끝나지 않은 시기였는지 절반 이상이 죽어버렸다.
강한 녀석들만 살아남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걸 또 배웠다.

집에서 키울 때 상추는 웃자라고 부드러웠는데, 노지에 심으니 모양과 질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고수와 루꼴라는 나무처럼 굵어져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냥 씨를 받으려 가만히 두었다.

고추냉이는 생각보다 잘 살아 있었다.
진딧물은 사라졌지만 이번엔 달팽이가 잎을 잔뜩 뜯어먹었다.
달팽이는 미안하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 보냈다. 죽이지는 않았다.
겨우내 집에서 피웠던 꽃에서 채종한 고추냉이 씨앗도 뿌려보았지만 새싹은 나지 않았다.
크기도 커지지 않았지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갈 때마다 물을 부어주었다.

이제 정말로 내 밭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니, 봄에 심을 씨앗을 샀다.
추위에도 심을 수 있다는 대파와 완두콩, 그리고 라벤더였다.
아직 모종을 살 마음은 없어서 모두 씨앗으로만 준비했다.

완두콩은 지주대를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품종으로 한 두둑에 심었다.
대파는 다년생 부추가 있어 애매하던 두둑에 마구 흩뿌렸다.
라벤더는 상상을 많이 했다. 꽃이 피면 라벤더 기름을 직접 짜볼까 상상하며 씨를 뿌렸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라벤더는 새싹 하나 올라오지 않았다.
씨를 뿌릴 때 물을 묻혀 심으면 좋다 해서 그대로 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혹시나 하나라도 나올까 봐 지금도 그 밭을 함부로 뒤집지 못한다.

그 이후에도 많은 씨를 심었다. 고추, 당근, 방울양배추, 비트 등등.
비료를 사지 않은 대신, 작년부터 텃밭에서 나온 잔여물과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고 있었다.
퇴비 만드는 법을 검색하며 화학비료의 단점을 조금 알게 되었다.
유기질 비료인 퇴비와 달리 화학비료는 토양 미생물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정도만 기억해 두었다.

그렇게 완두콩이 꽃을 피우고, 대파가 실파처럼 자라날 무렵 임신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되자마자 입덧이 심해져 거의 누워 지냈다.
회사는 겨우 다니고 연차를 많이 썼고, 텃밭에는 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훌쩍 시간이 지나 6월 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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