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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죽어서 하지 뭐

육아 속에서 얻은 뜻밖의 깨달음

by 홍페페

최근에 육아를 하다가 너무 힘들었다.
아기가 잡고 서는데 앉을 줄을 몰라 고꾸라지는 일이 잦았다. 어디 다칠까 봐 온몸이 긴장됐다. 내가 이렇게까지 불안해할 줄은 몰랐다. 내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해졌다는 사실을 그때 절실히 느꼈다.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지만, 아이의 언어 노출을 위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낯선 만남은 여전히 기가 빨리고 상처도 남긴다. 그런데 가끔은 의외로 재미있을 때가 있다.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도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가 행복하려면 엄마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체감한다.

하지만 육아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유식 전쟁도 함께 진행 중이다. 아기가 핑거푸드가 없으면 이유식을 안 먹어서 토핑도 하고, 냄비죽도 끓이고, 핑거푸드도 만들고, 며칠마다 새로운 재료로 알레르기 테스트도 해야 한다. 그래서 육퇴 후엔 ‘이유식 제작 출근’을 한다. 몸은 녹초가 된다.

그 와중에 아기 앞에서는 자상한 엄마이고 싶고, 모임에서는 이미지 관리하느라 하하 호호하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쌓인 짜증을 쏟아낸다. 결국 아기 앞에서 싸우기도 한다. 나는 부모님의 잦은 싸움 속에서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우리 아이만큼은 화목한 집에서 자라길 바랐는데,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러다 어느 날 나름의 ‘마음수련’을 하다가, 엉뚱한 깨달음을 얻었다.

“휴식은 죽어서 하지 뭐.”


웃기지만 진심이었다. 남편과 SES의 〈달리기〉 가사에 대해 최근에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숨이 턱끝까지 차도 달리자, 죽으면 달리고 싶어도 못 달리니까. 나도 예전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죽음이 두려웠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칠까 봐 결국 제명에 살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은 그냥 몸이 방전될 때까지 주어진 일을 하면 되지 않나? 어차피 마지막에는 긴 휴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이 생각을 한 후부터 육아가 덜 힘들어졌다. 남편에게 덜 화를 내게 됐고, 심지어 에너지가 솟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 하나가 이렇게 힘이 되다니.

그렇다고 내가 전혀 쉬지 않는 건 아니다. 여전히 틈틈이 쉰다. 다만 마음이 가벼워졌을 뿐이다. 삶은 짧다. 과거의 상처와 불행을 붙잡아 뭐 하랴. 오늘 누가 나를 무시해도 내가 잊으면 없는 일이고,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그 어떤 공격도 무효다.

이렇게 엉뚱한 깨달음 하나 얻었다.
죽어서 쉬면 되니, 오늘은 그냥 내 몫을 다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웃을 수 있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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