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는 아이 - 네 번째 발걸음
오늘은 윤현이가 내 손을 놓고,
누군가의 곁에 섰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작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윤현이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참 많은 걸 알려주었어요.
오늘 하루를, 조심스레 기록해 둡니다.
[3/14] 그냥 괜찮았어요.
[3/15] 친구가 생긴 것 같아요.
[3/18] 진짜였을까요?
1. [3/14] 그냥 괜찮았어요
3월 14일, 목요일
목요일은 병원 가는 날이다.
정신 건강 병원.
처음엔 무서웠다.
근데 이제는 조금 좋다.
거기에는 나처럼 움직이는 애들이 많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몸을 계속 꿈틀꿈틀 움직이기도 한다.
근데 아무도 화 안 낸다.
아무도 우리를 이상하게 안 본다.
그게 너무 신기하다.
나는 병원에 있을 때는 좀 안심이 된다.
그냥 내가 나여도 괜찮은 느낌이 들어서.
근데 이게 좀 슬프다.
학교에서는 꼭 참아야만 하니까.
2. [3/15] 친구가 생긴 것 같아요.
3월 15일, 금요일
오늘은 쉬는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
종이 한가득 별을 그렸다.
누가 내 뒤에서 말했다.
"그림 잘 그리네?"
고개를 들었는데,
같은 반 하늘이었다.
하늘이는 내 그림을 한참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았다.
그냥 같이 별을 그렸다.
나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하늘이는 그냥 옆에 있었다.
이상했지만 괜찮았다.
내 입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건 공격 기술이고요, 이건 진화하면 더 커져요. 근데 나는 노란색이 좋아요.”
하늘이는 내가 웃기다고 했다.
배고픈 것도
기침도
잠깐 잊었다.
3. [3/18] 진짜였을까요?
3월 18일, 월요일
오늘은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하늘이를 만났다.
하늘이가 나를 보더니
“윤현아!” 하고 달려왔다.
그리고 내 옆에 섰다.
진짜 내 옆에.
나는 갑자기 이말 저말 막 말했다.
포켓몬 얘기, 어제 본 만화 얘기,
갑자기 생각난 말도 그냥 했다.
근데 하늘이는
계속 웃으면서 "윤현아, 정말?" 했다.
진짜 듣는 것처럼. 진짜 웃는 것처럼.
그래서 나도
계속 말이 나왔다.
교실이 벌써 앞에 있었다.
윤현이는 원래
손을 안 잡으면 불안해하던 아이다.
항상 꼭, 아주 꼭 잡고 다녔다.
나는 가끔 생각했다.
‘이 아이는 언제쯤 내 손을 안 잡고 다닐까?’
조금 걱정도 됐고,
사실은.. 좀 귀엽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하늘이가 교문 쪽에서 “윤현아!” 하고 부르자마자
윤현이는, 망설임도 없이
툭— 내 손을 놓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그냥 웃음이 났다.
너무 쉽게 놓고 가버려서, 어쩐지 웃겼다.
뒤에서 “윤현아~” 하고 불러봤지만
대답도 없고, 고개도 안 돌렸다.
그냥 하늘이랑 나란히 걸어갔다.
너무 자연스럽게.
진짜 친구 같은 모습으로.
윤현이는 여전히
쉽게 긴장하고, 쉽게 지치고, 쉽게 엉뚱해진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윤현이의 말에
누군가가 “정말?” 하고 웃으며 대답해 줬다.
그 짧은 순간이
윤현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나는 안다.
“교실이 벌써 앞에 있었다.”
그 말 한 줄에,
다 담겨 있었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하다.
윤현이가 윤현이인 채로,
누군가 옆에 있어준 하루.
엄마는 참 웃겼고,
그래서 참 좋았다.
오늘도 출연 실패.
같이 걷다, 손도 잡았는데..
“윤현아!” 부르는 하늘이한테 달려가더라
그래도 괜찮다.
우리 아들이 웃었다.
그럼 됐다.
...진짜로.
#아빠의 노트
#오늘 도출연실패
#하이라이트는 하늘이
#조연은 조용히 퇴장
#괜찮다 그럼 됐다 진짜로
#오늘은 아빠연차
#기억편집당함
#출연욕심 없다 진짜
#아들은 웃었다 아빠는 삐졌다
ADHD 아이들이 혼잣말을 하는 이유는
주로 집중력 부족과 충동성 때문입니다.
혼자서 말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또한, 혼잣말은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할 때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윤현이는 조금씩, 아주 자연스럽게,
세상 속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그걸, 조금 서운하고,
많이 기쁜 마음으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