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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영 Sep 30. 2023

5. 아카데미(2)

“베베, 이리 와.”


아카데미에 입학한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베베는 여전히 수업시간마다 사라졌고 정원에서 발견 되었다. 크리스탈 사이에서 노는 것이 무척 재밌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며칠사이 마야의 인내심은 거의 바닥이 나버렸고, 화를 억누르는 것만이 마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분노는 마야에게 낯선 감정이었다. 유순한 성정의 마야가 지금껏 느껴 본 가장 부정적인 감정은 슬픔이었기 때문에 마야는 이 분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베는 어느새 침대 위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온갖 말썽은 다 피워놓고 태평히 잠든 모습을 보자니 마야의 속이 복잡해졌다. 마야는 오늘이야 말로 이 말썽장이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고, 베베를 남겨둔 채로 기숙사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도서관.

마야는 문 옆에 쓰인 글자를 읽으며 문고리를 돌렸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서 고개를 드니 높고 둥근 천장을 따라 그려진 웅장한 천장화가 보였다. 마야가 태어나기 전 잠시 고용된 로스트들이 그린 것이었다. 하늘이 파랗게 그려져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마야는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지금, 마야에게 있어 천장화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마야가 도서관에 온 이유는 오직 ‘베베’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으니까.


“무슨 일 때문에 방문하셨죠?”


마야가 아직 작은 어린 거신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계단형 사다리 위에 올라서자, 안내원이 친절히 물었다.


“자료를 열람하고 싶어서요.”


마야의 대답에 안내원은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저 열람실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마야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계단을 통통 내려왔다. 그리고 안내원이 알려준 문을 열고 열람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열람실에 들어간 마야는 거대한 내부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메인 홀보다도 더 높게 세워진 천장이 눈에 띄었다. 열람실의 천장은 투명한 덕분에 하늘이 잘 보였다. 마야는 고개를 내려 앞쪽을 보았다. 한쪽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책장들이 완벽한 간격을 두고 가지런하게 서 있었고, 다른 쪽에는 길고 넓은 대리석 테이블이 일자로 쭉 놓여 있었다. 벽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노란 크리스탈들이 걸려 있었는데, 색으로 보건대 다른 요람에서 들여온 것이 분명했다.


“아참, 이럴 때가 아니지.”


마야는 정신을 차리고, 열람실 한쪽 구석에 있는 도서 목록이 담긴 카드 서랍으로 향했다. 다 자란 거신도 이용하는 까닭에 서랍 한 칸이 마야의 몸 절반을 차지했지만, 서랍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는 사닥다리 덕분에 마야는 큰 어려움 없이 원하는 서랍을 열 수 있었다.


“찾았다!”


마야가 기쁜 목소리로 작게 환호하며 카드 하나를 빼어 들었다. 마야가 찾던 책의 위치가 적힌 카드였다. 마야는 그 카드를 들고 ‘찾기’라고 적힌 기계에 카드를 넣고는 기계에 붙어있는 레버를 힘껏 잡아 내렸다. 그러자 차르륵 돌아가던 기계 안에서 작은 상자가 튀어 나왔다. 상자는 순식간에 날아올라 서가로 사라졌고, 얼마 안 가 책 한 권을 가지고 마야에게로 왔다. 마야는 자기 몸집만한 책을 머리에 이고 어린 거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어?”


자리에 앉은 마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피디아와 랑을 발견했다. 오피디아는 여러 책을 펼쳐 놓은 채로 그 책들을 번갈아 가며 열심히 읽고 있었고, 랑은 그 옆에 가만히 떠 있었다.


‘저 둘이 맨날 어딜가나 했는데, 여기였구나.’


마야는 잠자는 시간이 아니면 늘 비어있던 기숙사를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눈에 띄면 기분만 상할 테니 말 걸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마야는 빌린 책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마야가 [탈라리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요람에는 아카데미에 입학한 거신들이 일 년에 한 번 자신이 자랐던 하우스에 찾아가는 ‘하우스데이’가 있었는데, 하우스에 방문한 아카데미 선배들이 어린 거신들을 위해 질문을 받아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마야는 궁금한 점을 모아 두었다가 이 행사 때마다 선배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했는데, 만약 모르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해요?"


한번은 마야가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질문을 받은 선배는 교수님에게 묻는다고 대답했지만, 마야는 그 이상이 궁금했다. 만약 교수님도 알지 못하는 지식이 있다면? 마야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런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교수들이라면 모든 지식에 통달한 거신들 아닌가.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면 아마 그건 질문이 잘못 되었을 것이다. 마야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속에서 솟아나는 궁금증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선배는 그 질문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카데미 도서관에 가면 '탈라리움'이라는 책이 있어. 거기엔 아주 기초적인 상식뿐만 아니라 고대의 지식도 모두 담겨 있지. 사실 별을 경영하는 데에 거기까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마망 바로 곁에서 일하는 나이 많은 거신들이 그 책을 찾아 읽는 걸 본 적이 있어. 어떤 답이라도 찾을 수 있다던데, 그걸 읽으면 되지 않을까?"


어떤 답이라도 찾을 수 있다. 마야는 그 말을 정확히 기억했다. 완전히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더라도, 베베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틀어볼 수는 없을까. 마야가 가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야카를 감히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야가 베베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아주 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찾아내야만 했다.


“별에 관한 파트가… 아, 여기구나.”


마야는 우선 ‘별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처음 몇 장은 마야보다 어린 거신들도 알고 있는 상식들이 쓰여 있었다. 이를테면, 거신들이 ‘낮’과 ‘밤’을 나누어 세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루카가 ‘하루’에 얼마나 들어왔는지를 세기 위해서다, 같은 것들이었다. 마야는 몇 장을 더 넘겨서 별의 힘에 관한 부분을 찾았다.


『별의 주요 힘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력이다. 두 힘의 근원은 모두 같다. 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별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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