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계획이 있어.”
오피디아는 마야를 이끌고 더 좁은 쪽으로 향했다. 갈라진 틈새는 누군가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목적없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오피디아는 이 틈새를 알게된지 얼마 안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길을 안내했다.
“사실 너에게 오기 전에 이미 네 별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어.”
“베베는 괜찮은 거야?”
“아직 아무런 일도 겪진 않은 것 같아. 그런데 언니한테 들었던 크리스탈 돔 안에 갇혀 있었어. 그 돔에 들어 있는 건 실험체라는 의미라고 했거든.”
“실험체가 뭔데?”
“고문당하는 개체라는 얘기야. 실험은 당장 내일이라도 시작될 수 있어.”
그 이야기를 들은 마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말이지, 저길 봐.”
오피디아가 틈새 하나를 가리켰다. 그 틈새는 연구실 천장에 뚫려 있었고, 틈새 바로 옆에는 실험실을 지지하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오피디아는 조금 더 멀리 손가락질을 했고, 그제야 마야는 저 멀리 격리되어 있는 베베를 발견했다. 베베는 잔뜩 심통이 난 표정이었지만, 어디 하나 상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말했지? 아직 아무일 안 겪었다고.”
“그러게. 다행이야.”
“안심하긴 일러 저 돔은 특수한 열쇠로만 열리거든. 그 외에는 방법이 없지.”
“그럼 어떻게 베베를 빼내지?”
마야의 물음에 오피디아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품에서 거대한 크리스탈 열쇠를 꺼내 들었다.
“내가 이미 슬쩍했지.”
“뭐?!”
“쉿! 그렇게 소리치다가는 들키고 말거야.”
오피디아가 마야의 입을 막았다.
“연구실 입구쪽에 열쇠들을 보관하는 곳이 있는데, 다행히 그 옆에도 틈새가 있더라고. 거긴 좁아서 열쇠를 들고 나오기가 까다롭긴 했지만. 어른들은 아무래도 몸집때문에 이런 틈새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더라. 게다가 이건 여분 열쇠인 것 같았거든.”
“넌 어떻게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거야?”
“말했잖아. 간절히 원하면 그것밖엔 안 보인다고. 사실 네 별은 그냥 보너스였어. 난 그냥 연구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됐거든. 언니가 지냈던 곳을, 그리고 마지막을 선택했던 곳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혹시라도 변수가 있으면 안되잖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했어.”
“그래서 어제 도서관에서 그렇게 많은 책들을 읽고 있었던 거구나.”
마야는 책을 여러권 펼쳐놓고 읽어대던 오피디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뭐야, 봤어?”
“응.”
“엄청 수상해 보이진 않았겠지?”
“음, 그냥 성적에 미친 신입생 정도로 보였던 것 같아.”
“너 생각보다 솔직하구나. 이건 칭찬 아니야.”
오피디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팔꿈치로 마야를 툭툭 쳤다.
“그럼 이제 베베를 구하러…….”
“잠깐.”
기둥을 타고 내려가려는 마야를 오피디아가 불러 세웠다.
“가기 전에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아니, 너에게 물어야 하는 거려나.”
“물어볼 거?”
“응.”
오피디아는 마야는 똑바로 바라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야도 덩달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네가 네 별을 구하는 건 혼자 해내야해. 나랑 랑은 만일을 위해서 여기 있을 거야.”
“그야 누군가는 망을 봐야하니까.”
“아니, 내 말은 네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와주지 않겠다는 얘기야. 왜냐면 난 여기 남아서 아카데미를 졸업할 거니까. 나에겐 아무일도 없어야 해.”
“하지만 연구실을 눈으로 보고 싶다고 했잖아.”
“네 별이 갇혀 있는 걸 보기전까진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네가 네 별을 구해내기만을 바라고 있어.”
“저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똑바로 좀…….”
“넌 네 별을 구하면 요람을 떠나야 해.”
오피디아가 마야의 말을 끊어먹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이야기에 마야는 잠시 할 말을 잃은 채로 오피디아를 쳐다보았다.
“뭐?”
“당연하잖아. 네 별을 구하고 나면 넌 우주 밖으로 도망쳐야하니까. 설마 요람 안에서 네 별을 숨기면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요람을 떠나야 한다고……?”
마야는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하지만 오피디아의 말이 옳았다. 마야는 왜 오피디아가 자신을 불러 세운 것인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넌 고향을 떠나야 해. 저 별을 구하는 댓가가 그거야. 그럴 수 있겠어?”
오피디아의 질문에 마야는 로스트들을 떠올렸다. 오피디아는 마야에게 그들처럼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오피디아가 베베의 운명까지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숙사를 통째로 먹어치운 것이 결코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실험체로 결정이 되었다면, 베베가 실험실에서 사라지는 순간 실험실의 모든 거신들은 베베를 찾아다닐 것이 분명했고, 그들이 가장 먼저 쫒아 갈 거신은 마야일 게 분명했다.
“우주로 도망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지 나는 모르겠어. 하지만, 저 별의 짝은 너잖아. 내가 할 수있는 건 네게 선택권을 제시하는 것 뿐이야. 물론 네가 네 별을 구하기로 마음먹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건 그냥 내 바람이야. 내가 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저 별을 구함으로써 지우고 싶어하는 거니까. 솔직히 이기적인 건 나도 알아.”
마야는 오피디아의 심정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 수는 없었다. 요람이 별을 고문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카데미를 졸업하겠다는 것도, 베베를 구하고 싶지만 직접 할 수는 없겠다는 것도, 어렴풋이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마야는 자기 앞에 놓인 선택권에 집중하기로 했다. 베베를 구하지 말 것인가, 구하고 요람을 떠날 것인가.
“나는…….”
마야가 입을 열었다.
“난 베베를 구하러 갈 거야.”
그리고는 오피디아의 품에서 열쇠를 뺏어 들고는 기둥을 내려갔다. 고개를 들어 틈을 올려다보니 오피디아가 놀란 얼굴로 마야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야는 앞으로 내달렸고, 곧 돔 앞에 설 수 있었다. 베베는 마야가 다가오자 잠시 뒤로 물러서더니 마야의 얼굴을 살피며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조그마한 꼬마 거신이 마야라는 걸 깨닫고는 얼이 빠진 얼굴로 돔 벽면에 바짝 붙었다.
“안녕, 베베.”
마야가 소리내 웃으며 돔 가운데에 달린 자물쇠를 열었다. 그러자 치익,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돔이 위로 열렸다. 마야가 팔을 벌리자, 베베가 쿵 하고 마야에게 달려들어 품에 안겼다.
“그래, 나도 반가워.”
마야는 베베를 떼어내고 몸을 살폈다. 다행히 상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마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베베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