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은 '혹시 내가 임신...?' 이라며 의심하던 나를 한 방에 K.O 시켰다. 테스트기의 안내문에는 임신을 알리는 두 줄이 나타나는데 몇 분이 소요될 수 있다고 했지만, 내 뱃속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리기에는 10초면 충분했다. <임신일 경우 2줄, 비임신일 경우 1줄로 나타납니다>라는 짤막한 문구를 그 자리에서 몇십 번 읽었다.
그래서, 내 테스트기는 지금 2줄이 나왔는데. 임신일 경우가 2줄이라고......?
선명한 두줄이 그어진 테스트기를 손에 쥐고 동대구역 한가운데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여느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고, 어느 곳도 응시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한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뱃속에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에 세상이 달라 보였던 임신 초기였다.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기 전과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부담과 설렘이 공존했다.
설레던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기집을 확인하고 6주 차가 되자마자 입덧이라는 무서운 놈이 찾아왔다. 당시의 내가 알고 있던 입덧이라 함은, 음식물의 냄새에 평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거나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음식에 대한 거부감뿐만이 아니었다. 심한 무기력증을 동반했다. 퇴근하고 나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 무기력함이 아니었다. 이별 뒤에 찾아오는 헛헛한 무기력함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딱히 연락할 상대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의 그 무기력함도 아니었다. 내가 지금껏 경험해온 무기력증의 정도를 수십 배는 상회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먹고 싶지 않은 생각과 동시에 입 안에서 쓴 맛이 났고 수시로 목이 탔으며, 목을 축이려 물을 먹어도 비린 맛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몸에 온 힘이 다 빠지다 보니 정신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뱃속에서 열심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새 생명의 안녕에만 집중하고 싶었지만, 나는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 갔다.
임신 중기가 되고, 입덧 약을 끊으면서부터 몸은 조금씩 나아졌는데. 무기력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주수가 찰수록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들이 있었다. 주수별 사진, 만삭 사진, 성장앨범 계약, 태교여행 등 예비 엄마(부모)들은 태어날 아이를 위한 준비를 열심히도 하는 것 같았다. sns에는 곧 태어날 아이를 기대하고 고대하며 하루하루 태교동화를 낭독하고, 클래식이나 자수 같은 고상한 태교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곧 태어날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이것저것 준비하는 사람들 틈에서, 거실 소파 위 혹은 안방 침대 위에서 한 없이 몸을 웅크리고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 내가 심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내 아이가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듯, 나도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른 예비 엄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 아이에게 애정이 너무 없는 사람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들은 다 하는 것을 나만 하지 않는 것 같은 마음, 그 마음은 뱃속에서 꿀렁꿀렁 열심히도 움직이는 아이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나는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 걸까? 자책하며 마음이 괴로웠다.
'왜 나는 그들과 이리도 다른지'에 대해 생각하며 끝도 없는 부정의 감정에 허덕였다.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이 매스꺼웠고 어지러웠으며 심한 뱃멀미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임신을 하면 피부결이 더 좋아진다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피부에 트러블이 나다 못해 악성 여드름으로 변질되었고, 매일이 피와 고름과의 사투였으며, 시간이 지나 그 자리에는 구멍이 푹푹 파였다.
대인기피가 심해졌다. 친정이나 친구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생활하면서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이 시기만큼은 멀찍이 있는 것이 적당한 구실이 되었다. 아무에게도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내가 보는 것조차도 어려운 시기였다.임신으로 인한 내 민낯을 허락한 건 남편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몸 상태는 정신까지 쇠약하게 만들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유명한 말이 그제야 피부로 느껴졌다. 하지만 뱃속에 생명을 품고 있는 나로서는 한 없이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어떤 노력을 해야 했다. 자꾸면 불편해지는 마음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했다. 책장에는 육아서적이 쌓여 있었지만 몇 번 펼쳐본 뒤로 손이 가지 않았다. 전형적인 정보 중심적인 육아서적 말고, 희망만 주는 육아 이야기 말고, '진짜 육아 에세이'를 읽고 싶었다. 어쩌다 알게 된 임경선의 <엄마와 연애할 때>라는 책을 읽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내가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북받치는 마음을 진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이에게 '너는 이런 아이였단다'라며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기나 유년기의 일들을 알려주기보다는 '나는 이런 엄마였고 여자였고 사람이었어'라며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모로 불완전했지만 그것이 너를 낳은 사람이고, 너를 낳고 키우는 일은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즐겁게 하려고 했다고. 덕분에 꽤 행복했다고.
그렇다. 나는 불완전해도 되는 사람이었지. 여러모로 불완전한 사람이지.
나는 '불완전해도 됨'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나는 '불완전한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기 바빴다. 모성애가 없는 사람 아니냐고, 이깟 입덧이나 무기력증에 휩싸여서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울 수 있겠느냐 하고 깎아내리기 바빴다.
나는 그저 과거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들도, 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주수별 사진을 차곡차곡 남기지 않아도 돼. 성장앨범을 굳이 계약하지 않아도 돼. 동남아나 발리로 태교여행을 꼭 다녀와야 하는 것도 아니야. 그런 것들로 너의 '모성애 결여'나 '자격 없음'을 운운하지 말아. 죄책감 갖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임신 호르몬이라는 지독한 놈이 너를 아무리 육체적으로 공격하고, 틈틈이 정신까지 지배해버리려고 하지만 너는 용감히 잘 버티고 있잖니. 아이가 영향받지 않도록 부정적인 감정을 부단히도 차단하고 있지 않니. 그게 바로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내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니.
죄책감 가질 일이 없다. 오히려 그것이 네 모성애의 첫 모습이 아니었을지.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다고. 그게 너의 엄마로서의 첫 모습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