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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재 replay Aug 04. 2021

기다리는 날들

알라스카 - 맛있는 북극이야기

출판사를 다니다 그림 그리는 프리랜서가 된 지 13년이 되었다. 직장에 가면 당연한 듯 내 몫의 일이 있지만 프리랜서란 누군가 일을 줘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생활이다. 일을 기다려서 받는다는 건 말로만 이해했지 이 생활에 익숙해지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생활은 일이 많으면 일이 많아서 힘들고 일이 없으면 돈을 못 버니 힘들었다. 늘 이달 생활비에 마음을 졸였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잘 그리는 사람도, 세련된 그림도 차고 넘쳤다. ‘내 그림은 안 먹히는 걸까?’ 늘 선택되지 못한 자의 불안감에 시달렸다.    

 

13년이 지난 지금 이 생활이 익숙해졌냐 하면 참으로 애석하게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아니 같은 게 아니고 더 지옥으로 변했다. 요즘 같으면 작가로 데뷔도 못했다 싶을 정도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화료는 제자리는커녕 떨어져 버렸다. 클라이언트에게 먹힐만한 그림만 그리면 되었던 시절은 가버리고 이제 대중의 인기도 얻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사이 몇 만의 팔로우도 엄청 더 잘 그리는 사람도 되지 못한 나는 여전히 기다린다. SNS에 그림을 올리며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보고 오지 않는 메일을 기다리는 작가가 되었다.     


“이제 뜰 때가 된 거 같은데...”
 “아직 때가 아니어서 그런가 보지,
네 때가 올 거야.”


주변의 기대와 응원 속에 여기까지 왔다. 온건 좋은데 못 뜨고 가라앉아버리면 어쩌지. 매일 앉아있지 못하고 서성이는 날들이다.  SNS만 키면 나만 빼고 잘 나가는 작가들이 수두룩하다. ‘좋아요’로 대중의 선택을 받은 라이징 스타들은 몇 만의 팔로우를 등에 업고 바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활짝 피어난 꽃같은 SNS 작가들을 보다 보면 초라한 마음이 드는 날이 많다.      


기다리면, 꾸준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꽃이 필까? 내 꽃은 대체 언제 피는 걸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사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문턱 언저리에서, 물이 끓어 오르기 직전 내가 먼저 지쳐 포기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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