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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by 일상리셋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아내가 몇 달째 행사 일정으로 바쁘다. 야근도 많고, 오늘은 회식이라 늦게 들어온다. 자연스레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일을 그만두면서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을 좀 더 돌보고, 아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아들은 요즘 영어 학원과 태권도 학원을 다닌다. 함께 등하원하며 보내는 시간은 기쁨이자 소중함 그 자체다. 특히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린이집과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들이 자세하게 털어놓을 때면, 나는 때로 분노하고, 때로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며 감정적으로 깊이 이입하게 된다. 사소해 보이는 다툼, 친구와의 관계에서 오는 오해, 태권도장에서의 성취 같은 아들의 '작은 사회생활'을 듣고 있노라면, 이것이 직장에서의 갈등, 혹은 목표 달성을 위한 고군분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른도 아이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똑같다.


오늘 저녁에도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엘리베이터에서 어른이 먼저 지나가실 수 있도록 문을 잡아드렸다는 것이다. 그 어른이 잠시 머뭇하다 “괜찮아, 네가 먼저 가렴” 하셨지만, 아들은 끝까지 손짓하며 “먼저 가세요”라고 했다며 웃었다. 또 태권도 학원 갈 때 뒷사람이 오길래 문을 잡아줬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대견한 마음에 말했다.

“그래, 온유야. 아빠가 살면서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행동들을 알려주니 잘 실천하고 있네.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워할까.”


그때 아들은 웃으며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아니야, 나는 아빠가 그렇게 말해서 한 게 아니야. 아빠가 엘리베이터 타면 항상 먼저 가시라고 하고, 내가 뒤에 오면 문을 잡아주잖아. 나는 그냥 아빠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따라 한 거야.”


아들이 내 기분을 좋게 하려는 말인지, 아니면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약간의 감동과 함께 큰 책임감이 밀려왔다. 아이들은 잔소리가 아닌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글귀가 떠올랐다. 말로 가르치려 애쓴 시간보다, 무심코 보여준 일상의 행동이 아들에게는 더 큰 교과서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른이 아이를 키운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이가 어른을 다시 배우게 만든다. 나의 하루가 아이의 내일이 되고, 아이의 말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언제나 말보다 ‘보여주는 삶’을 고민하게 된다.


요즘 세상이 ‘네 책임이냐, 내 책임이냐’를 따지며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사람도 더 모자란 사람도 없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중요한 건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적어도 그런 책임감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에게 닮고 싶은 ‘등’이 되어주는 그런 아버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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