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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Oct 03. 2023

에이~ 설마 제가 월 500도 못 벌겠어요?

| '자기 이해'와 '직업 세계 이해' |

 진로 수업을 준비하며 크게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자료를 정리했다. '자기 이해'와 '직업 세계 이해'가 그 두 가지이다. 한 학기 동안의 수업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던 첫 수업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부족할 때와 직업 세계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공부만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진로 수업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고 당부했다. 음악 시간에 우쿨렐레 연주법을 가르치던 사람이 진로 시간에 들어와서 '앞으로 뭐 먹고살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얼떨결(?)에 집중하는 듯했다.


 학생들의 집중 모드를 지속시키기 위해 몇 해 전 학생들을 데리고 진로 체험을 갔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은행에서 하는 일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실제 은행 창구와 비슷하게 꾸며놓은 체험장이었다. 체험에 앞서 교육 담당자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 금융업이 무엇인지 간략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중 어떤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만약 월급을 300만 원이라고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반 학생 한 명이 불쑥 끼어들며 "300만 원은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과연,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이 모든 순간을 끼어들기 좋은 순간으로 생각하는 학생다웠다. 강사님은 "아, 그래? 그럼 500만 원으로 할까? 어때? 너는 나중에 월급이 500만 원 정도 될 것 같아?"하고 학생에게 맞춰주셨고, 학생은 "에이~ 설마 제가 월 500도 못 벌겠어요?"하고 학교 밖에서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학생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 500만 원씩 버는 사람들이 많을까요?"하고 물어보았다. 허세 부리기 분야에서만큼은 이인자가 되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에이~ 월 500이라뇨~ 월 1000은 돼야죠~"하는 학생도 있었지만(얘야, 지금 희망 월급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란다) 나머지 학생들은 '월 500만 원이면 괜찮은 수준 아닌가?'와 '잘 모르겠는데?'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그래서 준비해 온 영상을 보여주었다. 첫 시간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준비한, 수업에 쓸만한 영상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하는 일과 연봉을 묻는 길거리 인터뷰 영상을 말이다.


| 우리 동네 주민들의 연봉은? |

 영상에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익숙한 동네 이름이 나왔다. 그 근처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여 하는 일과 연봉을 묻는 내용이 이어졌다. 은행원, 주차관리원, 법무사, 학원강사, 자영업자, 백화점 직원 등 하는 일만큼이나 수입도 다양했다. 학생들 입에서 "우와~" 소리가 나오는 높은 연봉도 있었지만 200~300만 원 정도의 월급도 많았다. 


 학생들이 살고 있는 이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라서 수업에 쓸만하겠다 싶었던 내 생각은 유효했다. 학생들은 꽤나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했다. 덕분에 영상 중간중간 일시정지를 하고 부연 설명을 할 수 있었다. '대형 유통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면 학생들이 '유통업'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인근에 있는 '대형 유통업체'의 이름을 말해보는 식이었다.


 영상을 보고 난 뒤에는 관련 활동지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이 쓴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양하고, 수입도 다양한 것 같다.

- 생각보다 월급이 적은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 나는 나중에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 200만 원대 월급을 받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전기세 같은 거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을 텐데.

- 저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있나?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 집을 샀는지 궁금해졌다.


 월급을 모아 집을 사는 게 가능한지까지 생각해 보다니, 중학생이라고 허세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모차르트의 중고거래 |

 사실, 진로 수업을 돈 이야기로 시작해도 되나 고민했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시작해 보라고 내 등을 떠민 건 모차르트였다. 전무후무한 천재 모차르트조차도 돈 문제가 머릿속을 떠날 날이 없었으니까. 먹고살기 위한 활동으로서 직업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수입 이야기로 학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슨 문제랴 싶어졌다.


 모차르트의 편지를 읽다 보면 돈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어디서 무슨 연주를 하면 얼마를 벌 것 같다는 계획 속에 등장하는 액수뿐만 아니라 옷소매 수선 비용과 마부에게 지불하는 금액까지도 나와있다.

 지금 막, 고용 마부하고 계약했습니다. 그 마부는 11루이도르로, 우리를 우리 마차(모차르트 모자가 잘츠부르크에서 만하임까지 타고 온 마차)로 파리에 데려다줍니다. 마차는 그 마부가 우리에게서 40플로린에 사줬습니다. 
- 1778년 3월 11일,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 중에서 - 

 다 쓴 마차를 중고로 되팔고 받은 40 플로린을 주머니에 넣는 모차르트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놀라운 재능을 가진 천재이기에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일 것 같지만 그의 중고거래 장면을 떠올려보면 그도 나와 다를 바 없이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들으며 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드는 일이 모차르트의 밥벌이 수단이기도 했다는 걸 생각해 본다. 동시에 '에이~ 설마 제가 월 500도 못 벌겠어요?'를 말하던 학생의 밥벌이 수단은 무엇이 될까 궁금해진다.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끊임없는 작곡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던 모차르트처럼 그때 그 학생은 5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얻을 수 능력을 잘 만들어가고 있을까. 그 학생이 허세꾼으로만 남게 되지 않길, 멀리서나마 응원해 본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 고요한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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