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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즈 Sep 09. 2024

선생님, 내년에도 우리 학교에 계실 거죠?

막차 탄 건강검진

건강검진해야 하는데 시간을 뺄 수가 없었다. 수업이 주당 20시간이라 하루 공가(건강검진은 공가)를 쓰면 며칠 동안 그 수업을 메우느라 고생해야 했다. 그래서 3학년 학년말 프로그램 기간을 노리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은 고입 일정 때문에 기말고사를 11월에 본다. 고입성적 산출이 끝난 후 졸업식까지 6주의 기간 동안 학년말 교육과정을 짜서 운영하곤 한다. 고등학교 생활과 고교학점제에 대한 안내, 융합수업, 그래피티 등 창작활동, 뮤지컬, 영화 관람, 교외 체험학습 등으로 운영하는데 그 업무가 내가 맡은 일이었다. 6주 교육과정을 짜고 운영하느라 수업할 때보다 더 바빴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다 핑계에 불과하다. 교환수업을 해서라도 건강검진부터 받았어야지. 건강과 나를 돌보는 일은 내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학교일 하고 나서 시간이 나면 그다음에.....'

 늘 이런 식이었다. 난.

2023년에도 12월 27일에서야 건강검진을 받았다.


수면내시경 예약을 잡지도 못해 비수면으로 위내시경을 받고, 유방암 검진을 위해 영상촬영실에 들어갔다. 몇 년째 보는 방사선사 선생님이 반갑기까지 했다. 지금껏 유방암 영상 촬영에서 아무것도 나온 적이 없었다. 치밀 유방도 아니라 영상촬영으로 잘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들어가서 시키는 대로 자세를 취하며 찍고 있는데, 방사선사 선생님이 묻는다.


"유방에 뭐 있다는 이야기 들으신 적 있으세요?"

“아니오.”

해맑게 대답했다.

"그냥 일상적으로 묻는 말입니다."

방사선사는 이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땐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질문쯤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촬영하면서도 종괴가 선명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난 아무 걱정하지 않았다. 설마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음으로 산부인과 검진해야 하는데 다른 병원에 가서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가를 오전만 내고 와서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잠시 망설였다. 별일 없을 텐데 다음에 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전만 시간내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언제 또 시간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부인과 검진을 위해 인근 병원으로 이동을 서둘렀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결정은 나의 삶을 아주 많이 바꿔놓았다. 지금도 그 순간의 결정을 자주 떠올린다. 평소 나답지 않은 결정 덕분에 병을 더 키우지 않고 발견할 수 있었다.

산부인과 검진 초음파 검사에서 2년 전에 3cm였던 난소낭종이 8.5cm가 되었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난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물혹 정도야 다들 몸속에 한 두 개는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난 내 몸을 돌보지도 않았을뿐더러,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러니 여러 번 신호를 보내도 못 알아들으니까 더 강도를 높여 암이라는 한 방으로 세게 알려준 것 같기도 하다.


그 신호탄은 2024년 1월 5일 졸업식날이었다. 지지고 볶고 1년을 부대꼈던 아이들을 졸업시키는 날.

반별 공연 형식으로 졸업식을 감동적으로 끝내고, 아이들이 떠난 식장을 정리하고 교무실로 돌아가는데 어떤 분이 내 쪽으로 걸어오시며 인사를 하셨다. 모르는 분인데 누구실까 생각하며 나도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저 3학년 2반 00 엄마예요. 멋진 졸업식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선생님 내년에도 우리 학교에 계실 거죠? 00 동생이 1학년이거든요."


내년에도 우리 학교에 계실 거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영화 속 복선인 것처럼 그 말이 자꾸 생각난다. 그날 이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어서.


졸업식을 마치고 학년부 선생님들과 회식 가는 도중에 문자를 받았다.

Web 발신 -**병원 검진실 - 검진결과 유방촬영에서 우측유방종괴, 좌측유방종괴 소견입니다. 초음파 요망됩니다.


이때에도 난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학년부 회식을 즐겁게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제발 자기 좀 돌보라고, 몸도 좀 챙기라고 하는 수많은 조언들을 귓등으로 넘긴 채 22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해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들을 그때에도 난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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