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선고일
초이샘이 울었다.
조직검사 결과 괜찮냐는 카톡 물음에, 유방암이라고 답했더니 곧바로 전화해서는 운다.
“왜? 샘이 왜? …… 왜 샘이? ……. 왜?.....”
초이샘 본인도 암에 걸렸으면서 내가 왜 암에 걸린 거냐고 운다.
초이샘은 재작년 여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5년 동안 혁신학교에서 함께 일한 동료다. 그녀는 학교에서 시스템 사고를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학교 전체를 보고 사람들을 다독거리고 챙기러 다녔다. 누구에게든 가서 말을 걸고 일을 도와주었다. 심지어 불통의 상징인 부장에게까지 가서 함께 하자고 했다. 그렇게 수업 공개를 하자고 했고, 그렇게 대토론회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녀의 암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 난, 그녀가 학교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5개월 후 나도 같은 병에 걸렸다.
우린 암환우가 되었다.
탕탕탕, 조직검사
초음파 진료가 필요하다는 병원의 문자를 받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초이샘에게 물었고, 그녀에게 유방외과를 추천받아 병원에 갔다. 유방 영상촬영을 다시 하고 초음파 촬영까지 하더니, 모양이 안 좋다고 조직검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탕탕탕. 탕탕탕, 탕탕, 탕탕
총조직검사라고 불리는 이 검사는 진짜 총소리가 났다. 총 맞은 부위를 5분간 지혈하고, 상이군인처럼 붕대로 감싼 후 집에 돌아왔다. 조직검사받으며 긴장한 탓인지 온몸이 쑤시고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다.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왼쪽은 물혹이고, 오른쪽은 악성일 가능성이 20%라고 했다. 그런데 혈관이 주위에 모여있고 모양이 울퉁불퉁한 것이 위험요인으로 보인다는 의사의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이때까지도 난 20%의 가능성이 그렇게 높은 확률이란 것을 몰랐다. 20% 안에 내가 들어갈 리 없다고 생각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불안의 싹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슬금슬금 불안의 싹이 올라오려고 하면 얼른 그 싹을 잘라버렸다. 지금 걱정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결과가 나온 다음 생각하자고 다독였다.
불안을 누를 수 있었던 것은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무대책의 긍정성이었다. 그러나 미세한 불안의 싹을 완전히 잘라내지 못했음을 유튜브 알고리즘이 말해주었다. 유튜브에서 ‘유방암', '조직검사'의 영상이 자꾸 떴다. 이런 약간의 불안한 심정을 라니에게 말했는데, 엉뚱한 답변이 돌아왔다.
"샘, 요새 살 빠져요? 암에 걸리면 살 빠지잖아요."
살이 빠지는 증상이 없으니 암이 아닐 거라는 그 요상한 답변에 안심이 되었다. 암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대화였지만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그 지루하고 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암 선고일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20%의 확률을 낮게 생각한 나는 혼자 병원에 갔다. 병원에 들어서면서 주차권 어떻게 받는지 묻고 있는 나를 보는 병원 직원들의 표정과 분위기가 이상하고 싸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원장님 진료 본 후에 드리겠다고 했다. 이때부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 선생님이 암선고를 한다.
"안타깝게도 우려했던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측 종양은 유방암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설명이 길게 이어졌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운전하는 동안에도 울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울지 않았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단계가 있다던데 '부인'의 단계였던 것 같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나 자신까지 속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기타 레슨도 갔다.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직검사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 알고 있던 초이샘은 나의 암 발병 소식을 가장 먼저 알게 되었다. 초이샘은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같은 처지의 초이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초이샘은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초이샘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나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앞으로 나에게 닥쳐올 파도는 얼마나 크고 험난한 것이길래 먼저 그 파도를 맞은 그녀가 이토록 우는 것일까? 그녀가 겪은 고통을 내가 걸어가게 된 것이 마음 아프다며, 나와 유방암 환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에게, 난 샘이 있어 두렵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초이샘에게 뭐가 가장 힘들었냐고 물었다. 두려움이라고 했다. 몸의 변화가 감지될 때마다 느끼는 두려움.
나도 이제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걸까?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동굴 속으로 숨어든 시간
암선고일 이후 동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내고 싶었다.
"누나야 무슨 일 있어? 랭이 누나가 누나 너 연락 안 된다고 전화했어."
이 메시지를 받고서야 가만히 뒀다가는 모두를 들쑤시고 연락할 것 같아 랭이에게 연락했다. 생각 좀 정리하게 가만히 좀 있으라고.
랭이는 내가 연락이 안 된다고 난리 치는 라니의 성화 때문에 동생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했다고 했다.
연락 안 된다고 난리 친다는 라니 때문에, 걱정돼서 동생에게까지 전화한 랭이 때문에 펑펑 울었다. 울게 되면서 회피의 단계에서 수용의 단계로 넘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회피 심리기제가 컸다. 나도 받아들이지 못한 사실을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다.
몸속에 있는 1.65cm의 암덩어리가 힘을 발휘하지 않을 텐데 암선고를 들은 뒤, 난 환자가 되어버렸다.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까?'
이 두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