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앤 어게인
나는 신입 공채가 대세였고, 순혈주의와 승진주의가 한창이던 시절에 취업을 했습니다. 한 곳에서 정주하며 선배들을 잘 따르고, 영광의 바통을 물려받는 것이 전부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원을 갔고, 졸업을 하면서 도전의 마음이 깃들었습니다. 어느덧 이직 경험이 꽤 있는 경력직으로 살고 있습니다.
경력직은 경계인의 삶이었습니다. 소속이 되어 있지만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기만 합니다. 회사는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어 주기를 원합니다. 또 후배들을 잘 이끌고 회사의 방향에 맞춰 새롭고 차별화된 가치를 내기를 원합니다. 다른 곳에서의 경험과 문제를 해결했던 갖가지 일들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나를 뽑아준 회사는 얼른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적 규격에 잘 맞춰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다양성은 언제나 통일되고 체계화된 질서에 밀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 같기도 합니다.
차장이란 직급을 또 다른 이름처럼 달고 산 이후부터는 상사로서의 면모를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명확한 지시와 카리스마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직급 체계가 있는 회사들은 직급이 없는 조직에 비해 하나부터 열까지 보고 받고, 윗선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입니다. 자유도가 없는 사회에서는 노동을 통한 자아의 실현이 쉽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 따로, 결정하는 사람 따로 분리된 공간은 각자의 지위와 분수에 걸맞은 캐릭터를 갖는 것이 미덕이 됩니다.
경력직으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 회사는 어땠어요? 여기와 비교하면 뭐가 달라요?"였습니다. 정말 차이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눈치이기도 하고, 사실은 별반 다르지 않을까 하는 자조 섞인 질문 같기도 합니다. 이전 직장은 어땠냐는 질문에는 좋았다, 비교하는 질문에는 좀 다른 면이 있다고 말하며 끝을 냅니다. 윗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들이 구성원들과 관계하는 방식이 곧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가 구성원들이 회사에 가지는 마인드와 태도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차마 못 합니다. 서로 뻔히 아는 만들어진 쇼의 무대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대사를 충실히 소화할 뿐입니다.
다가오는 연말을 앞두고 송년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년에는 송년회를 위해 TF가 꾸려졌고, 노래방 기계가 있는 곳에서 돌아가면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내가 삼십 대 초중반까지 겪었던 문화가 복고풍처럼 다시 돌아온 느낌입니다. 올해도 다르지 않을 거란 소문과 각 팀에 세 명 정도는 노래를 해야 한다는 낭설이 떠돕니다. 상대적으로 어리고 직급이 낮은 친구들은 애써 웃으며 그러려니 하는 표정입니다. 하지만 일대일로 만나 넌지시 물어보면, 다 큰 나이에 재롱잔치하게 생겼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습니다. 팀장들이 임원분에게 말을 해 줘야 하는데 오히려 더 극성인 것 같다며 답답해합니다.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잘 몰라 듣기만 합니다. 새어 나오는 실소와 함께 어르신들의 흥은 세월이 지나도, 어느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라며 별 볼 일 없는 말을 건넵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송년회를 특별하게 보내려는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그 일에도 희생을 치르고 고통을 부담하는 세대와 집단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불현듯 '어게인, 송년회'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나는 반쯤 미쳤던 것 같습니다. 해외 유명 여가수의 복장으로 운동장 한복판에서 춤을 췄고, 신고 있던 하이힐이 벗겨져 꽈당했었습니다. 그것마저 웃음의 포인트가 되었고, 보는 사람들에게 어설픈 광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몸이 아픈지, 어디가 다쳤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에 재롱을 떨어줬으면 모든 것이 괜찮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분이 나쁠 새도, 불편한 감정을 말할 틈도 없었습니다. 빨리 내년이 되어 나의 자리를 대체할 누군가가 얼른 들어오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은 시간이 흘러도 추억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특별하거나 소중했던 경험이 아니었기에 인생의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같이 지워진 흔적이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점차 자라난 생각은 "그런 쓸데없는 일에 굳이 감정을 섞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또는 조직에 대한 생각이 극단의 혐오로 빠지는 걸 막기 위해 마음 훈련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그냥 마음 쓰지 말고, 괜한 말도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은 못 합니다. 차라리 망신살은 같이 뻗치는 게 덜 아프지 않겠냐며 같이 해 주겠다는 말을 하지만, 실없는 소리에 위로받고 안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지 못하고, 주류와 결탁해 원만한 관계를 조장하려는 차장의 얕은수를 모를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한창나이 때 이런 일에 얼굴을 붉히며 살아봤는데, 남는 건 까탈스럽고 드센 면이 있는 문제적 직원이라는 오명뿐입니다. 우린 문제가 있는 일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용기 내어 말하고 싶어도 위계와 권력에 본능적으로 순응하고, 고립보다는 자기 보호를 해내는 당신들의 비겁함을 존중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