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날씨가 이래도 되나 싶더니 금세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올해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나저나 벌써 한 달 전이네. 그러고 보니 1년이나 지났네. 겨울로 갈수록 시간이 고속열차를 타는 것 같다. 작년 겨울, 엄청 추웠고 몸이 떨렸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다 말라버렸던 순간이 고스란히 기억난다. 괜찮다 말하는 건 껍데기고 아직도 속살은 아파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참 질기다. 감정이란 게 끊는다고 끊어지는 것도 신기하고 붙이면 붙는 것도 새삼스럽다. 하룻밤의 꿈처럼 12시가 돼서 현실로 돌아온 신데렐라 같다. 그러나 그 현실이 나쁘지 않다. 여기에 만족하고 나만의 미래를 그려본다.
자그마한 것 하나라도 피하고 싶고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나름 용기를 낸다. 사람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고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속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은 아니다. 포장되고 정제된 마음만 보여준다. 그게 이 세계의 법칙인 걸 깨달았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던 아이를 여러 번 안아주었다. 며칠 동안 끙끙 앓았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다.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괜찮지 않으니까. 그 대신 좋은 일도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나쁜 일이 없을 순 없지만 좋은 일도 일어난다는 것. 그래서 내일이 기다려진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초저녁잠을 2시간이나 잔 아이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조잘조잘 얘기를 한다. 그리고 5시엔 일어나서 어제 못 본 책을 본다. 그 덕에 나도 생각을 정리할 소중한 새벽 시간을 얻었다. 어제는 예상 못한 시나리오다. 그래, 이런 게 인생이지. 가끔 인생의 우연이 반복되는 건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