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생각하는 건 괜찮은 거겠지.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 거니까. 예전에 <사토라레>라는 일본 영화를 봤던 게 기억이 난다. 마음속 소리가 모든 이에게 생중계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월요일이네.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겠다. 이때쯤 돌아오겠지? 나도 모르게 스케줄을 읊조리고 있다.월요일에 언니들과 만나기로 한 건 잘한 일이다. 아이들 보내고 아침부터 북한산이 한눈에 보이는 스타벅스에 앉아서 크로와상에 따뜻한 커피 마시고 근황 토크하다가 근처 칼국수 집에서 뜨거운 국수 후루룩했다. 그리고 그냥 가기 아쉬워 카페에 또 가서 수제 레몬티와 자몽티 마시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진눈깨비가 한가득이다. 올해 11월에 폭설이 내린 후 몇 주일 만에 오는 눈이라 더 반갑다. 작년 겨울에 눈 길에 발이 푸욱푸욱 빠지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던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김이 후후 나는 공기 사이로 난로 같이 따뜻했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작년엔 추운 것도 좋았는데 올해는 추운 게 너무 싫어 밖에 나갈 때면 중무장을 하게 된다.영하의 날씨도 아닌데 눈이 차가움이 사무치게 느껴진다. 이런 게 끝인 거겠지.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어 예전만큼 슬프지 않다. 미련도 후회도 많이 줄었다. 이렇게 말라버렸으면 좋겠다. 화석처럼 수백 년이 지난 후 그 존재가 드러나길 바란다. 그래도 오늘 하루 잘 이겨낸 거 같아 기분이 좋다. 그래, 잘 해내고 있어.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는 거야.진눈깨비가 점점 더 세차 진다. 내 마음도 와이퍼처럼 흔들리고 그럼에도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