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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리 Oct 14. 2021

이상한 나라의 잠잠이

호주의 병원 시스템과 호주에서의 임신 생활

 (사진: 19주 1일 된 잠잠이의 측면 얼굴 초음파)


   호주의 의료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통증 부위에 따라 병원을 찾아가는 한국과는 다르게, 호주는 모든 진료를 GP로부터 시작한다. GP는 General Practitioner의 약자로, 호주의 일반의를 뜻한다. 환자는 진료를 보고 싶은 과를 찾아가기 이전에 GP를 찾아가 상담을 해야 한다. 치과와 안과는 예외다. GP에게 증상을 얘기하면 GP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소견서를 써주는데, 이 소견서를 가지고 정신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의 전문의를 찾아가게 된다.


    임산부의 경우 역시 산부인과 이전에 GP에게 임신 확인을 받는다. 소견서를 받아 초음파 촬영을 하게 된다. 초기 초음파를 통해 임신 주수와 출산 예정일을 알게 된다. 다시 GP를 방문하여 '옐로카드'라고 불리는 산모 수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GP와의 상담 및 본인 결정에 따라 출산하게 될 병원을 선택한다. 공립 병원을 선택할 것인지, 사립 병원을 선택할 것인지는 본인의 사보험 및 재력 여부에 따라 다르다. 사보험이 없는 경우에는 보통 공립병원을 선택하게 된다. 호주 시민권자와 영주권자에게 주어지는 '메디케어 (일종의 국민보험)'로 출산이 커버되기 때문이다.


    한국과 호주의 가장 큰 차이라면 호주는 미드와이프(midwife)라고 불리는 조산사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임산부는 출산 전부터 미드와이프를 꾸준히 만나 상담을 하게 되는데,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케어도 같이 하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 출산할 때도 의사 대신 미드와이프가 들어온다. 의사는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들어온다. 미드와이프는 의사는 아니지만 출산 전문 의료진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드와이프 대신 계속해서 GP와 만나도 된다. GP는 출산 전문 의료진은 아니지만 메디케어가 없는 경우 미드와이프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출산 병원이 집에서 먼 경우 GP를 방문하는 것이 차량 이동거리도 고 시간 절약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임산부는 보통 임신 기간 동안 네 번의 초음파를 보게 된다. 초기 초음파, 12주 초음파 (목덜미 투명대 검사), 20주 초음파 (성별 확인 가능), 그리고 36주 초음파 검사다 보편적이다. 초음파를 보는 정확한 주수는 개인차가 있다. 한국은 거의 산부인과를 방문할 때마다 초음파로 아기를 보여주지만, 호주는 초음파 검사에 박한 편이다. 36주 초음파는 출산까지 한 달 정도 남은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검사인데, 막달에는 태아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데도 출산 직전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출산하게 된다. 더불어 요청하지 않으면 초음파 사진을 따로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초음파 사진을 받고 싶은 경우에는 요청을 해야 한다. 초음파 전문 이미징 센터에서는 이미지 파일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공립병원 같은 경우에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가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과 같이 예쁘게 프린트된 초음파 사진을 주지는 않는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산모 수업과 부모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병원마다 수업 개설 여부와 수업 횟수는 다를 수 있지만 출산과 육아, 모유 수유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제공한다. 코로나 중에는 줌으로 화상 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주는 '자연주의 분만'을 선호한다. 그 말인즉슨 유도 분만보다는 자연 진통을, 제왕절개보다는 질식분만을, 무통주사보다는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선택은 산모에게 전적으로 달렸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제왕절개를 해주길 기대한다면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의 내용은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적은 글입니다.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임신 초기, 호주에서의 나의 신분은 '투어리스트'였다. 영주권 신청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내 최대 고민은 '보험과 메디케어 없이 어떻게 병원비를 충당할 것인가'였다. 호주에서 사보험이나 메디케어 없이 아기를 낳기 위해서 드는 출산 금액만 호주 달러로 $8,000이 넘는다. 정말 딱 출산에 드는 병원 비용만 말이다. 나는 메디케어를 발급받기 전까지 GP 진료 때마다 $50를 지불해야 했다. 공립 병원에라도 가서 피검사를 하거나 초음파 검사를 하면 $150씩은 우습게 깨졌다. 심지어는 미드와이프와의 통화 한 통에 $100 넘게 지불한 적도 있다. 한국보다 초음파를 자주 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마울 지경이었다.


    영주권 신청을 한 후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병원 진료 수납을 한 경우에는 영수증을 모아놨다가 추후 메디케어 카드가 발급되면 환급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주권 신청을 했다고 해서 메디케어가 바로 나오지는 않는다. 메디케어 카드 신청을 하고, 접수를 하고, 카드를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한국에서는 하루면 될 일을 호주에서는 적어도 2주, 넉넉잡아 한두 달은 마음 놓고 기다려야 한다.


    메디케어를 받게 되면 GP진료, 초음파 검사, 출산 등이 모두 커버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메디케어 카드를 수령하기 이전까지의 진료는 100% 환급이 안된다는 점이다. GP 진료 $85을 냈으면 그중에서 $73 정도만 환급이 되는 식이다. 이보다 더 황당한 경우는 피검사로 $294를 지급했는데 환급금은 고작 $41였다. 환급절차는 접수도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계속해서 추가 서류를 요구한다. 미드와이프 진료의 경우에는 의사 진료로 분류되지 않아 아예 환급이 거절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환급받지 못한 금액이 꽤 된다. 아마, 앞으로도 받지 못할 것 같다.




    잠잠이가 우리 곁으로 찾아왔을 때 세상에는 돈보다 더 무서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호주 전역에 '블랙 서머'라고 기록될 만큼 막대한 부시 파이어가 일어났다. 부시 파이어는 10주 동안 지속됐다. 30억여 마리의 야생동물이 죽거나 피해를 입었고 3천여 개의 집이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34명의 직접 사상자가 발생했고, 연기로 인한 호흡기 혹은 심장 질환 간접 사망자가 445명에 달했다. 호주가 산불과 연기에 고통받는 동안 세상에는 이보다 더 무서운 질병이 확산됐다.


    임신 초기만 해도 호주는 나름 코로나 청정지역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마스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마스크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예방차원으로 마스크를 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눈총을 받을 정도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 혹은 '코로나 감염자'라는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얼마 못가 시드니에도 확진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마스크 사재기가 시작됐다. 그보다 더 후에는 휴지 사재기 대란을 겪었다. 사람들은 휴지를 사기 위해 몸싸움까지 벌였다. 코로나로 인해 전과 같은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불똥은 아시아인에게 튀었다.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는 사건들이 생겼다. 혼자 바깥을 나갈 일이 생기면 내가 믿을 건 볼록 튀어나온 내 배 하나였다. 설마 임산부한테까지 해코지를 하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내 배 덕분인진 몰라도 나는 무사히 임신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토록 이상한 세상에서 잠잠이는 엄마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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