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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Jan 31. 2024

낯선 세상

15

인간의 자아가 타인의 잠재의식과 상호작용 할 수 있다는 추정적 설정이 수아를 통해 증명된 샘이었으나, 서하박사는 이 현상에 대한 정신의학 타당성을 검증할 수가 없었다. 관련자료나 연구사례가 없을뿐더러, 잠재의식의 상호작용 가설 자체가 소설 속에 나오는 텔레파시처럼 증명하기 어려운 허구에 가까웠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아가 보여준 잠재의식의 상호작용은 실로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가 없었기에, 서하박사는 수아가 지닌 능력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수면유도제 투입할게요. 숫자를 10부터 거꾸로 주세요."


숫자를 다 세기도 전에 태우는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뇌파 감지기에서 수면 상태를 확인한 서하박사가 소파에 앉아있는 수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수아는 태우의 꿈속으로 가기 위해 눈을 감았다.


푸른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이 보인다. 탄성이 터져 나올 듯한 탁 트인 풍경은 어느 것이 바다이고, 어느 것이 하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파도가 밀려왔다 가버리는 해변 모래사장에 태우가 누워있었다. 수아가 그의 으로 다가갔다.


"왔어?"

"네"

"여기 너무 좋지? 늘 이런 곳을 늘 꿈꿔왔어."

"아저씨, 이제 가야 해요"


수아가 손을 내밀자 태우가 그 손을 잡았다.


무중력 상태에서 회오리에 휘말린 것 같은 어지럼증이 느껴졌고, 태우 눈앞에 낯선 세상이 보였다.


"기철 꿈속에 왔어요."

"다른 사람 꿈이 이렇게 생생하다고? 믿을 수가 없어."


태우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생소해서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낮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밤도 아닌, 백야처럼 빛이 그늘져 보였고, 억새 위로 보이는 파란하늘에는 희미한 초승달이 떠 있었다.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아저씨 혼자서는 현실로 돌아갈 수 없어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들이 가는 길 앞에 인형 하나가 나타났다. 인형이 춤추는 듯한 동작을 보였고, 그 모습이 귀여워 수아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뒤에서 여러 개의 다른 인형들이 모습을 보였다. 수아가 밝게 웃으며 인형을 만지려 하자, 인형들이 바람 들어간 풍선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귀여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 흉하고 괴이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형들의 손에는 핼러윈 스릴러 영화에 나올 법한 날카로운 흉기가 쥐어져 있었다.


"이거 꿈 맞네!"

 

태우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인형 중 하나가 수아에게 칼을 휘둘렀고, 태우가 이를 막아서다 손이 베였다. 태우 손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다치면 안 돼요. 꿈이지만 현실처럼 고통이 느껴져요. 아무래도 여기서 피하는 게 좋겠어요!"


수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태우의 옷이 철갑으로 바뀌며, 그의 손에는 방패와 단검이 들려 있었다. 흡사 고대 전쟁터에서 막 튀어나온 장수 같은 모습이었는데, 태우 자신도 이 상황을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흉기를 휘두르고 있는 인형들을 방패로 막아내며, 태우가 그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단검으로 인형의 가슴을 찔러 숨통을 끊으려 했지만, 인형들은 고통을 느끼거나 죽지 않았으며, 더 맹렬하게 공격해 왔다.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검은 물체가 떨어지며 땅이 흔들렸다. 뿌연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괴물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물은 인형 중 하나를 잡아 팔다리를 찢어 바닥에 냉핑계 쳤다. 그것을 본 인형들이 괴물에게 달려들기 시작했고, 태우와 수아는 혼란한 틈에 숲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처럼 이빨을 드러낸 괴물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태우가 방어 자세를 취하며 괴물의 공격에 대비했다. 주변 환경이 어두워지며, 괴물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당황해하는 태우를 향해 괴물의 갈고리 같은 손이 날아들었고, 방패로 막았지만 거센 충격에 태우가 뒤로 넘어졌다. 

전의를 가다듬고 일어선 태우의 단검이, 어느새 장검으로 바뀌며,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검광 때문에 눈이 부셨는지, 괴물이 한쪽 팔로 빛을 가렸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태우가 괴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괴물의 한쪽 팔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고, 고통스러운 듯 팔을 감싼 괴물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1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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