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혁 Feb 07. 2024

검은 베일

16

생사를 오가는 긴장감의 끝에서, 태우가 넘어질 듯 휘청거리며, 옆에 있던 나무에 손을 짚었다.


"기철을 찾아야 해."

"여기는 기철의 꿈속이에요. 모든  그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들 앞에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다가왔다.


"못 보던 분들이군요."

"누구시죠?"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우리는 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새 가면을 쓰고 있는 아이요."

"그 아이는 왜 찾죠?"

"아이를 아시는군요?  아이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요?"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  만나게 될 겁니다."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여자는 그들을 지나쳐 갔다.


"아! 한 가지."


여자가 가던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이곳은 당신들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떠나세요."


여자의 말이 경고처럼 들렸지만, 수아와 태우는 개의치 않았다. 이곳에 온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람 부는 들판지나, 탐스럽게 열매가 열린 과수원 앞에서 장대를 든 한 농부와 마주쳤다.


"혹시, 새 가면 쓴 아이를 아시나요?"

"새 가면? 아, 그 아이."

"아시는군요.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요?"

"음... 글쎄. 오며 가며 가끔 한 번씩 보는 거라서... 사는 곳은 모르고, 저기 언덕 넘어 내려가다 보면 큰 동굴이 보이는데, 거기에 한번 가보세요."


두 사람은 농부가 알려준 곳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덕 아래로 내려온 그들은 어렵지 않게 동굴을 찾을 수 있었고, 마침 동굴에서 나와 노란색 킥보드를 타고 가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아이를 쫒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들이 도시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기철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있는 장소 일거라 생각했다. 거리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 났고, 높은 건물들과 상가 간판들이 즐비했는데, 아이는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쳐 건물들 사이로 들어갔다. 수아와 태우도 아이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붐비던 도시와는 다르게 골목 안쪽은 어둡고 인적이 드물었다. 그들이 골목 안을 이리저리 찾아 헤맸지만, 가면 쓴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낯선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걸어오는 게 보였다. 수아가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 새 가면을 쓴 아이가 지나가지 않았나요?"


남자가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가슴에는 뭔가에 찔린듯한 상처가 보였다.


"다치셨어요?"

"난 괜찮아요. 집에 가야 해요."

"집이 어딘데요?"

"잘 모르겠어요. 생각이 안 나요."

"어쩌죠?, 지금은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남자가 수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날 이렇게 만든 게 야?"

"아니에요. 우리는 아이를 찾으러 왔을 뿐이에요."


남자는 말없이 그들을 지나쳐 어디론가 걸어갔다. 수아는 남자의 얼굴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고 느꼈는데, 그가 기철에게 살해당한 고 준호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저 남자는 기철에게 살해당한 사람이에요. 기철이 사체를 남긴 유일한 사건이었고, 그 때문에 잡히게 되었죠."

"자기가 죽인 사람이 꿈속에 살아있다고?"

"기억이에요. 자기가 살해한 사람을 기념품 수집하듯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살해당한 사람들을 모두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거야?"

"잘은 모르겠으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기철의 꿈속에 여러 번 들어왔었지만, 죽은 사람을 본 건 저도 처음이에요. 저 남자의 경우는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불어온 돌풍에 수아와 태우는 눈을 뜨지 못했다. 돌풍 속에서 나타난 괴물의 공격에 대처하지 못한 태우는 발에 차인 깡통처럼 바닥을 나뒹굴었고, 한 손으로 수아를 낚아챈 괴물은 하늘로 솟아올라 새처럼 멀리 날아갔다.



17에서 계속

이전 15화 낯선 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