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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Feb 14. 2024

각성

17

세찬 바람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자신을 어디로 끌 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수아는, 두려움 때문몸이 떨려왔다. 아직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언제든 괴물에게 죽임을 당할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그녀를 힘들 했다. 괴물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이라도 기철의 꿈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나, 수아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수아에게서 분리된 태우의 자아는 자력으로 기철의 꿈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인데, 그것은 찢어진 택배상자에서 빠져버린 동식품 같다고 해야 하나? 보낸 자와 받는 자의 정보가 사라진 내용물은 그냥 문 앞에 버려진 음식 쓰레기와 다를 바 없고, 반품처리도 할  없는 골칫덩어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서의 태우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식물인간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수아가 태우를 찾기 위해, 기철 꿈속에 들어간 하더라도, 태우의 자아와 다시 연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괴물이 동굴 상공을 선회하더니, 먹이를 둥지로 가져가는 맹금류처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깊숙이 들어간 괴물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수아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숨을 곳을 찾았다.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수아가 소리에 의지해 상황을 판단하려 했으나, 괴물이 움직이는 소리뿐 아니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에 적응한 눈이 서서히 시력을 회복하고 있었는데,


"너, 뭐야?"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기철이 수아를 노려보며 말했고, 놀란 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곳에 어떻게 왔어? 이곳은 누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여기에는 나만이 존재할 수 있는데,  넌 대체 뭐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인 기철의 손에서 긴 칼이 자바라처럼 늘어나 솟아올랐다. 기철은 그 칼을 휘저으며 공포스러운 행동을 보이다가 뭔가 이상했는지, 동굴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서 작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동굴 안에 빛이 번지며 검을 들고 뛰어오는 태우가 보였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태우가 기철을 향해 검을 내리쳤지만, 기철은 검을 피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태우가 수아를 보호하려고 방패를 들자, 기철이 들어간 어둠 속에서 커다란 곤충 한 마리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마귀였다. 사마귀는 좌, 우로 몸을 흔들며 톱날 같은 앞발로 공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튕기듯이 날아오는 사마귀의 앞발이 태우가 들고 있던 방패를 낚아챘다. 방패를 뺏긴 태우는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고치며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사마귀의 앞발이 다시 날아오자 태우는 검으로 막아내더니, 몸을 회전시키며 사마귀의 앞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사마귀가 톱날 같은 앞발로 태우를 낚아챘다. 날카롭고 강한 앞발에 갑옷이 찌그러지며, 몸이 조여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것만 먹는다는 사마귀는 포식자의 본성대로, 니퍼 같은 입을 움직이며 태우의 머리를 뜯어먹으려 했지만, 태우는 굴하지 않고 자신을 잡고 있는 사마귀의 앞발을 검으로 내려쳤다. 사마귀의 앞발이 잘리며 태우는 풀려났지만, 잘린 앞발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태우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분노한 사마귀가 남아있는 앞발로 다시 공격해 왔고,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태우의 갑옷이 뚫리며 날카로운 앞발이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태우가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수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태우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으며 외쳤다.


"끝"


태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이 보였고, 몰결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푸른 바다와 모래 해변이 보였다. 태우는 아무도 없는 평화로운 그곳에 자신 혼자 누워 있었다. 수아는 보이지 않았다. 태우의 몸이 거짓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의 몸을 파고들었던 날카로운 상처의 흔적도, 붉은색 혈흔도 보이지 않았고, 살이 찢어지는 통증도 없었다. 태우는 기분이 좋아, 자리에서 일어나 빙그르 한 바퀴를 돌았다.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밝게 웃태우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태우 뒤에서 사마귀가 모습을 드러냈고, 날카로운 앞발을 들어 올리더니, 무방비 상태였던 태우를 내리쳤다. 순간, 태우가 손바닥으로 사마귀의 앞발을 막아냈다.


"여기는 내 꿈이야. 이곳에서 나를 이길 수는 없다!"


사마귀의 몸이 돌처럼 굳어져 움직이지 못했다. 태우가 손을 뻗어 칠판 위의 글씨를 지우듯이 손짓하자, 사마귀의 몸이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태우는 기철의 꿈속에 있을 때 보다, 자신의 꿈속에서 힘이 강해진 걸 느꼈다. 생각하는 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18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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