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수아는 두려움에 몸이 떨려왔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기철의 꿈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수아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수아에게서 분리된 태우의 자아는 자력으로 기철의 꿈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찢어진 택배상자에서 빠져버린 냉동식품 같다고 해야 하나? 보낸 자와 받는 자의 정보가 사라진 내용물은 그냥 문 앞에 버려진 음식 쓰레기와 다를 바 없고, 반품처리도 할 수 없는 골칫덩어리일 것이다.
결국, 현실의 태우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식물인간으로 서서히 죽어갈 게 분명했고, 설령 수아가 다시 기철 꿈속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태우의 자아와 연결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괴물이 상공을 선회하더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깊숙이 들어간 괴물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수아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주변을 더듬거려 바위 뒤로 피신한 수아가 소리에 의지해 주변 상황을 인지하려 했으나, 주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서히 시력이 어둠에 적응할 때쯤,
"너, 뭐야?"
어둠 속에서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수아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누구세요?"
"나? 여기 주인이지. 여기는 누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넌 대체 뭐지?"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동굴 안에 빛이 번지며 검을 들고 뛰어오는 태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불빛으로 인해 수아 앞에 서있던 기철도 보이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태우가 기철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동굴의 차가운 기운이 갈라지며 기철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태우가 수아를 보호하려고 방패를 들자, 기철이 들어간 어둠 속에서 커다란 곤충 한 마리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사마귀였다. 사마귀는 좌, 우로 몸을 흔들며 톱날 같은 앞발로 공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튕기듯이 날아오는 사마귀의 앞발이 태우가 들고 있던 방패를 낚아챘다. 방패를 뺏긴 태우는 당황하지 않고 두 손으로 검을 힘껏 잡았다. 재차 사마귀의 앞발이 날아오자 태우는 검으로 막아내더니, 몸을 회전시키며 사마귀를 공격했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사마귀가 톱날 같은 앞발로 태우를 낚아챘다. 날카롭고 강한 앞발에 갑옷이 찌그러지며, 몸이 조여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것만 먹는다는 사마귀는 포식자의 본성대로, 니퍼 같은 입을 움직이며 태우의 머리를 뜯어먹으려 했지만, 태우는 굴하지 않고 자신을 잡고 있는 사마귀의 앞발을 검으로 내려쳤다. 앞발이 잘려나가며 태우는 사마귀에게서 떨어졌지만, 잘린 앞발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태우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화가 난 사마귀가 남아있는 앞발로 다시 공격해 왔고,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태우의 갑옷이 뚫리며 날카로운 앞발이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태우가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수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태우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으며 손을 동그랗게 모았다.
"오메가"
태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이 보였고, 몰결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푸른 바다와 모래 해변이 보였다. 태우는 아무도 없는 평화로운 그곳에 자신 혼자 누워 있었다. 수아는 보이지 않았다. 태우의 몸이 거짓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의 몸을 파고들었던 날카로운 상처의 흔적도, 붉은색 혈흔도 보이지 않았고, 살이 찢어지는 통증도 없었다. 태우는 기분이 좋아, 자리에서 일어나 빙그르 한 바퀴를 돌았다.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밝게 웃던 태우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태우 뒤에서 사마귀가 모습을 드러냈고, 날카로운 앞발을 들어 올리더니, 무방비 상태였던 태우를 내리쳤다. 순간, 태우가 손바닥으로 사마귀의 앞발을 막아냈다.
"여기는 내 꿈이야. 이곳에서 나를 이길 수는 없다!"
사마귀의 몸이 돌처럼 굳어져 움직이지 못했다. 태우가 손을 뻗어 칠판 위의 글씨를 지우듯이 손짓하자, 사마귀의 몸이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태우는 기철의 꿈속에 있을 때 보다, 자신의 꿈속에서 더 힘이 강해진 걸 느꼈다. 생각하는 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18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