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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백록고사리 - 수직동굴에 대롱대롱

by 로데우스

수직동굴에서 대롱대롱

백록고사리를 보려다가

백록고사리를 사는 모습을 융내낸 격이다.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0737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tTjhxw9YUZvjp%2BeKnzsmKvhu0Eo%3D 수직동굴에서 올려다본 백록고사리



수직 동굴의 밧줄에 걸린 시어니의 몸은
미늘에 걸린 물고기의 발버둥을 벗어난 절규였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백록고사리도
끌리는 것에 빠져보는 나의 열정도
모두 잠재운 채
오직 순간을 넘어야 한다는
절박감 하나로 버티고 있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뱅뱅 도는 밧줄에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할 수 있는 것은 버둥거리는 것 뿐
어깨는 경직되어 굳어 있다.

오버행 굴속 절벽에서 흔들리며
습기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은 오만상이고
옷은 절벽에 쓸려 만신창이가 된 모습은
생생하면서도 무기력한 풍경이었다.

img.jp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0737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LGJxYkXddSoltSLz2dNWyrE2BIs%3D 백록고사리 인증샷



그 때를 지금 생각하면
찬란하게 아름다운 발악이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할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순간들은
또 다른 시간들과 합쳐
미친 광시곡(狂詩曲)을 연주한다.

그 연주의 음률을 타고
백록고사리의 잔상들은
흔들리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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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은 습기가 많아 안경은 흐릿해졌고
디카의 렌즈는 뿌옇게 물방울이 맺혀있다.
디카는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핸드폰 렌즈를 속옷에 비며 물기를 제거한 후
겨우 찍을 수 있었다.

무거운 디카 가방을 밧줄에 달고 내려온 것이
터무니 없게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핸드폰 작은 렌즈에 물기를 씻기에 바빴다.

그렇게 백록고사리 모습을 보았다.
남방계 고사리 포자가 바다를 건너 날아와
한라산 남쪽 기슭의 습기 많은
수직 동굴에서 싹트고 터전을 마련했던 것이다.

나는 이 동굴에 내려와
두 눈으로 백록고사리를 바라본 것에 만족한다.
더 이상의 접근은 백록고사리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미세한 공기와 습기의 흐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백록고사리야 얼굴 보여줘서 고맙구나
이 동굴 속은 너의 웃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부디 더 많이 번식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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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 / 백록고사리

학명 / Tectaria fuscipes

분류 / 미늘창고사리과(Tectariaceae) 백록고사리속(Tectaria)


한국에 백록고사리[Tectaria fuscipes (Wall. ex Bedd.) C. Chr.]를 처음으로 보고한다. 이 종은 한국에 서 보고된 바 없는 미늘창고사리과(Tectariaceae Panigrahi)의 미늘창고사리속(Tectaria Cav.)에 속한다. 백록고사리는 거의 직립하거나 비스듬히 올라가는 지하경, 이형엽 또는 반이형협, 유리맥이 있는 특징이 있다. 이 종은 제주도 서귀포시 한라산 남서부 사면에 분포하고 있으며, 중국의 남부지역과 대만에서도 자생한다. 일본에는 미늘창고사리속 식물 8종이 보고되어 있으나 백록고사리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제주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백록고사리의 분포 지역 중 가장 최북동 지역이며, 그 서식처는 작은 수직동굴 내부로 한정되어 있다.

(출처 / 한국식물분류학회지 초록 (201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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