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 떠도는 설연휴 잔소리 메뉴판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 중에 내가 들어보았던 말을 떠올리다, 다른 것에 비해 유독 비싼 머리숱 지적질에 대한 가격을 보면서 또 피식. 그래, 머리숱 그거 엄청 스트레스라고. 우리 인간적으로 머리는 건드리지 맙시다.
비단 명절에만 그럴까. 친척들이 모인 자리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언사들이다. '저런 말도 못 하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럼 무슨 말을 하냐'는 입장을 고수하는 분들은 아마도 별생각 없이 그저 인사 대용으로 저런 말을 했을 수 있다. 단순히 '오랜만이네~' 뒤에 덧붙일 말을 찾지 못해 저런 잔소리를 붙이는 참사가 일어나는지도.
고3의 진학, 대학생의 취업, 사회초년생의 벌이, 여자의 외모, 결혼과 출산까지.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저 잔소리들을 살펴보면 일관된 결이 보인다. 이 문장들 속에 사람의 '존재'는 없다. 오직 사람의 '기능'만이 있다. 잔소리 속에 있는 무언의 메시지는 아마도 다음과 같지 않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게 학생의 제 기능이다. 높은 연봉 주는 회사에 들어가 많은 돈을 모으는 게 직장인의 제 기능이다. 여자는 살 빼고 꾸며서 외모를 매력적으로 가꿔야 여자의 제 기능을 하는 것이다. 결혼을 했으면 애를 낳아야, 가급적 여럿을 낳아야 제 기능을 하는 것이다.
돈 버는 기계, 공부하는 기계, 애 낳는 기계, 전 부치고 상 차리는 기계.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에게 마치 기계를 대하듯 기능만을 강조하면 사람이 소외되고 만다. 상호이해관계를 벗어난 관계에서마저 사회의 무의식적 압박을 가슴 깊이 새길 이유가 어디 있으랴.
사람이 소외되면 비극이 시작된다. 사람은 '기능'하는 기계가 아닌 것을...
사람을 '기능'으로만 보지 말고 '존재'로 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사람다운 정이 생겨난다.
사회에서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여자로 기능하다 지친 사람들을 우리들끼리라도 '존재'로 대해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