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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르도 Aug 02. 2024

황제가 사랑한 개

Looty의 후예들

자식자랑은 팔불출, 반려동물 자랑은 팔불출을 넘어선 구불출이라고들 손가락질하던데. 

자기 아이들이 입학 전에 구구단만 외워도 영재아라고 난리 치는 부모들을 생각하면 내가 도솔이를 내 삶의 태양이라고까지 찬양하는 모습 또한 매한가지인 듯싶다. 내 아이는 달라요라는 식의 유별난 과대 이상화를 시전하고 있다고 욕먹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페키니즈를 예찬한 사람은 지구상에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놀라지 마시라. 지금으로 따지면 러시아의 푸틴정도쯤 되려나. 역사의 몇 안 되는 절대권력자 중 한 명이 나보다 더 페키니즈를 극찬했다.

바로 중국의 진시황이다.     


나는 역덕(역사덕후)이 아니지만, 한번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이의 티끌 같은 과거까지도 모조리 남김없이 헤아리고 싶어지는 법. 도솔이와 사랑에 빠진 나중세사부터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페키니즈의 장엄한 역사를 샅샅이 조사하고 채집했다. 그리하여 페키니즈의 유래부터 한번 짚고 넘어가 보자면, 우선 페키니즈 Pekingese라는 이름은 '베이징의 개'라는 뜻의 영어명이다. 중국 현지에서는 '징빠(京巴, jīngbā)'라고도 불린다.     

페키니즈는 티벳 지역의 승려들이 기르던 견종인 티베탄 스파니엘에서 유래된 품종으로 추정되는데, 재미난 것은 시츄와 퍼그는 페키니즈를 개량한 품종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따라서 족보가 꼬이지 않게 항렬 정리를 좀 하자면 시츄는 엄연한 페키니즈들의 후손들이다. (시츄들아 산책하다 페키 만나면 공손히들 인사하자꾸나)      


또한 진시황이 궁전 안에서 황실견으로 키워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혹자들은 진시황이 사랑한 페키니즈의 일화를 터무니없는 야사로 치부하기도 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페키니즈를 처음 알게 된 유럽인들이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으로 중국 문명사를 들여보다가 작은 실마리 하나를 토대로 허황된 이야기들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정말 허구일까?     



아카데미 9관왕에 빛나는 대작, 영화 <마지막 황제>에는 서태후가 다음 왕위 계승자로 어린 푸이를 지목하는 장면에서 페키니즈가 등장한다. 아울러 어린 황태자 푸이가 페키니즈와 함께 노니는 장면, 푸이의 후궁인 문수가 페키니즈를 키우는 장면 또한 잠시 연출된다. 작품 속에서 서태후가 키우는 페키니즈는 전통적인 황색의 페키니즈였고 문수의 페키니즈는 흰색으로 등장했다.      


페키니즈는 무려 8세기 중국 당나라 때부터 황실과 왕족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한편 왕족인 주인이 죽으면 사후 세계에서 주인을 지키도록 함께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지만 개 주제에(?) 왕의 부장품으로써의 지위 또한 부여받았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류 귀족계층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만큼 일반 평민들이 페키니즈를 키우는 것은 금지했고, 만약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그 대가로 처형되었다고 하니 이 정도면 페키니즈는 실로 극상의 노블레스 견종이었다고 해도 전혀 과대평가가 아니다.


귀족들의 애견이었던 만큼 별명도 다양했다. 소형견이라 체구가 아담하여 황포 소매 속에 넣어가지고 다녔기에 슬리브 도그(Sleeve Dog) ‘소매견’이라고도 불렸고, 가슴부위를 감싸고 있는 앞갈기 털이 마치 금수의 왕 사자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사자개’라고도 불리었다. 또한 썬 도그(Sun Dog)’귀신 쫓는 개로도 불려졌는데, 이런 별칭들에서 페키니즈가 일정 부분 신화화되기까지 한 담론적인 측면 또한 엿볼 수 있다. (도솔이의 이름이 ‘Do Solar’의 뜻을 담고 있음은 을 가장한 필연이다.)      



왕실의 사랑을 독차지한 페키니즈들은 그야말로 개팔자가 상팔자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과 동물로서는 유사 이래 전례가 없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우선 왕실의 보호 속에서 불어난 개체 수를 관리하기 위하여 이를 전담하는 환관들이 배정됐는데 그 수가 무려 4,000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시녀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질병으로 아파 죽게 되어도 왕실의 페키니즈를 먼저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야 했으며, 언감생심 평민들은 페키니즈를 훔치기만 해도 즉시 사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페키니즈를 사랑하는 내입장에서 봐도 이건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또한 당시에 왕실에선 페키니즈들에게 샥스핀과 마도요의 간, 신선한 우유와 고급 보이차, 바다제비 집으로 끓인 수프를 먹였고, 건강에 문제가 생겨 기력이 쇠했을 땐 표범의 다리에서 짜낸 귀한 기름을 발라주기도 하고 지빠귀의 알을 구해다 먹게 했다고 한다. 아울러 디저트로는 커스터드 소스를 얹은 사과까지 급여했다고 하니 이게 바로 개 상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직까지 사람인 나조차도 먹어보지 못한 산해진미들을 페키니즈의 조상님들께선 끼니마다 챙겨 먹고살았던 것이다.     


이토록 황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중국 본토의 페키니즈가 유럽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편전쟁 때이다. 1860년대 아편전쟁이 시작되고 곧 연합군은 베이징의 자금성을 탈환했다. 그때 중국 왕실에서는 중국의 고유한 문화유산인 페키니즈를 결코 외부 세계에 유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엽기적이게도 그들은 페키니즈들을 서구사회에 빼앗기느니 차라리 다 죽이자는 쪽으로 중지를 모았고, 왕실의 명령이 떨어졌다. 가여운 페키니즈들은 영문도 모르고 하룻밤 사이에 운명이 뒤바뀌어 그들의 손에 목이 졸려 죽어갔다.      


빅토리아 여왕과 루티Looty



그러나 기적처럼 왕의 숙모 중 한 명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품속에 4마리의 페키니즈를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 자신은 영국군들에게 발각되어 처형당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 4마리의 페키니즈들은 대영제국으로 보내졌다. 그 중 한 마리가 영광스럽게도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쳐졌다. 인도양을 건너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품에 안기게 된 페키니즈는 ‘Looty’라는 이름을 하사 받게 된다.


잊지 마시라. 우리가 이따금 길 가다 마주치는 페키니즈들은 모두 진시황을 거쳐 빅토리아 여왕의 품에 안긴 ‘Looty’의 귀한 후손들이다.      


가장 사소한 우연으로 보이는 것이 가장 깊은 운명의 근원에서 나온다.
프리드리히 실러. 독일 시인


영국 왕실견이 된 루티Looty



이처럼 역사적으로 고증을 해보아도 귀한 아이들일 뿐만 아니라, 영험하게도 페키니즈는 다친 영혼을 낫게 하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가진 태양의 개 (Sun Dog)’이며 동시에 귀신 쫓는 개이다.     

페키니즈 도솔이가 나에게로부터 자해하는 우울증 귀신, 그 몹쓸 잡귀를 물리치게 한 이야기들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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