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 동굴에 서재를 숨기고 책읽었던 독서광

혼독 - 혼자라면, 읽을 때다 13

by 리치보이 richboy

2부. 혼자라면, 읽을 때다



13. 시공간의 제약을 기회로 만든 군인의 혼독

- 구국 구민을 위한 '마오'의 선택



중국인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손꼽히는 마오쩌둥은 혁명가이자 박학다식한 학문 가이며 특히 부지런한 독서가였다. 미국의 학자 트리얼은 <모택동전>이라는 책에서 세계적인 지도자 가운데 독서를 가장 즐기는 사람으로 드골과 마오쩌뚱 두 사람을 꼽았을 정도다.


마오쩌둥은 산책을 나가도 손에 책이 있고, 차 안에도, 침대에도, 심지어 화장실에도 책을 두고 읽었다. 또한 마오쩌둥은 휴식을 독서로 대신했다. 독서하면서 머리를 쓰는 것은 일할 때 머리 쓰는 것은 달라서 충분히 휴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구국 구민(救國救民)의 진리를 탐구하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읽기 시작하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동서고금의 각종 서적을 탐독했다.


마오가 어린 시절 읽은 책들은 <수호전>, <홍루몽>, <삼국지>, <서유기> 등 반란류의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소설의 내용 대부분이 압제자에 맞선 봉기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기도 해서 1세기 전 청나라 조정에 의해 민중들이 읽기에 해로운 금지 서적으로 지정된 책들이었다. 마오쩌뚱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읽은 이 책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6세에 마오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가출해서 마을 가까이에 있는 상향현 현립 동산 소학교에 입학했다. 그 시절에도 마오는 정말 많은 책을 읽었는데 다른 학생들이 귀가한 후에도 홀로 교실에 남아서 읽었고, 저녁엔 양초를 켜고 그 양초가 모두 타들어갈 때까지 매일 독서했다.

마오쩌뚱은 19세에 성립 제일중학교에 입학했지만, 교과 과정이 지나치게 제한인 데다 학교의 규정 또한 못마땅해서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아예 매일 호남의 성립 도서관에 파묻혀 책만 읽었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점심은 떡 두 개로 해결하며 읽고 또 읽었다.


마오는 각종 신문은 물론 워싱턴, 나폴레옹, 피터 대제, 예카테리나 2세, 웰링턴, 글래드스턴, 링컨 등도 두루 읽었고, 방대한 양의 경제학 책 역사책들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이렇게 보낸 6개월의 시간은 독서가 마오쩌뚱을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청년 마오에게 지식의 무한함을 깨우쳐 주었고, 지식의 탐구에도 끝이 없음을 가르쳐 주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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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뚱이야말로 말 그대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의 삶을 살았다. 말 그대로 '공부는 시간이 남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빠서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몽처럼 독서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장개석의 국민당에게 쫓기는 대장정 중에 말라리아에 걸려 들것에 실려가면서도 책을 붙들고 있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중국 혁명전쟁 때에서조차 마오는 책 읽기를 잊지 않았다. 시련과 고난에 짓밟힐수록 오히려 책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으로 커져갔다. 마오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열일곱 번이나 탐독하여 제왕학의 교본으로 삼았고, 육도와 삼략, 손자와 오자의 병법에 정통해서 병서에도 아주 밝았다.

해방전쟁과 항일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마오쩌뚱의 군사전략은 오롯이 그의 독서력 덕분이었다. 특히 그는 독서하면서 따로 견해를 적어두었던 책들을 무척이나 아꼈는데, 일본군 비행기의 폭격 때에는 서재를 깊은 동굴로 따로 옮겨서 보관했을 정도였다.


마오는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피곤함은 물론 식음을 잊고 읽었다. 마오가 자주 인용하는 중국 속담은 “배움에는 끝이 없다(活到老 學到老).”이었는데, 그는 업무 외에 이용할 수 있는 거의 시간을 독서에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공산당 관리들에게도 책 읽는 습관을 키워서 업무 외의 시간을 독서로 채울 것을 호소하며 독서를 권했다.

마오쩌둥은 평소 침실과 사무실, 수영장의 휴게실, 베이지 교외의 거처, 그 어느 곳에든 책을 읽었다. 또한 그는 외출할 때마다 책을 지녔으며 외지에 가서는 현지에서 책들을 빌려 읽었다. 마오쩌뚱이 걸출한 혁명가이자 사상가, 전략가로 평가받는 것은 그의 이러한 박학다식한 학문과 풍부한 지식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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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학문이 없으면 어두운 도랑을 걷는 것처럼 더듬어낼 수도 없으며 사람을 몹시 고생스럽게 하지만, 학문이 있으면 산 위에 있는 것처럼 더 넓고 많이 볼 수 있다.”라고 즐겨 말했던 마오쩌뚱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맹자의 말씀을 빌려 “서경(書經)을 그대로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느니만 못하다.”며 독서에 심취하되 책 내용을 맹신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우리는 독서를 하는 이유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다. 독서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그에게도 독서는 사색을 위한 수단이었다. 마오쩌뚱은 책을 읽거나 한 편의 글을 읽은 뒤에는 늘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옆에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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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마오쩌뚱에게 큰 어려움이 닥쳐왔다. 독서에 대한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는데, 백내장으로 시력이 완전히 감퇴되어 더 이상 혼자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에게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건 너무나 큰 괴로움이었다.


그는 죽기 1년 전, 83세이던 어느 날, 책을 대신 읽어줄 사람을 찾기로 했다. 마오에게 책을 대신 읽어줄 사람은 표준어를 구사해야 하고, 말주변이 좋은 사람,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눌 만큼 문학 실력도 갖춘 사람이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뽑힌 사람이 바로 44세의 북경대 여교수 ‘노적’이다.

노적은 두 손을 책을 받쳐 들고 모택동의 침상 옆에 서서 읽었다. 밤 11시에서 새벽 2시 사이 불시에 불려 가곤 했는데 모택동의 독서 분야가 워낙 넓었기 때문에 노적은 늘 긴장했다고 한다. 마오는 실제로 죽는 순간까지 배움으로 채우는 삶을 살았다.


1976년 9월 8일 5시 50분에 임종한 마오는, 임종 당일까지 7분간 용재수필(容齋隨筆)을 읽었다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내가 다시 10년을 더 살고 죽는다면, 9년 359일을 배울 것이다.” 그가 옌안에서 있었던 연설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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