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보다 자녀를 사랑한다. 아이들이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실제로도 그렇다). 당신이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이 알길 바란다. 아이들이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아프다. 이것음 모두 지극히 건강하고 칭찬할 만한 감정이다.
하지만 부모는 끝없는 칭찬으로 아이들의 에고를 키워선 안 된다. 우리는 아이들의 장점에 자연스러운 편견을 갖는 것과 아이들을 단점을 보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당. 세네카가 썼듯이, 다정함을 담아 솔직하게 말하고, 아이들의 행동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비록 부모의 마음이 아프더라도 말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아첨을 가까이해선 안 된다. 아이에게 신실을 듣게 하고 때로는 진실을 두려워하게 하되 항상 진실을 숭배하게 하자. 아이들 앞에서는 일어나게 하자. 벌컥 화를 내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하자. 아이가 울었을 때 얻지 못한 것을 조용해졌을 때 주도록 하자. 아이가 아버지의 부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자. 아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책망받게 하자.
세네카는 이러한 균현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았다. 이것은 대부분의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정서적이고 안정적이고 자각력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라면 반드시 노력해야 하는 문제다. 비록 지금 당장 아이에게 달려가서 얼마나 훌륭하고 특별한 아이인지 알려주고 싶더라도 말이다.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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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얘가 변했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가 있다. 하지 않던 변명을 하거나, 엄마의 꾸지람에 투덜거리거나, 혼잣말로 불평을 하는 등. 문제는 전혀 맞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안 하던 짓'을 불쑥 불쑥 한다는 것,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아이가 이런 식의 대응을 할 때 마다 당황하고 황당해 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상황은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 배운다. 같은 반 아이들의 태도를 보고 흉을 보다가 배우고, 아이들의 말버릇을 놀리다가 또 배운다. 이를테면 어느 날 아이가 자기 반 친구가 선생님이 충고를 하시는데 말도 채 끝나기도 전에 "아~ 예, 예." 하면서 소위 '영혼없는 대답'으로 선생님의 말을 끊는다며 호되게 혼이 났다고 엄마에게 말하며 흉을 봤다. 그러더니 일주일이 안 되어 엄마의 충고에 그렇게 대답하는 내 아이를 보는 것이다.
아무리 예쁜 내 자식이라도 '아닌 것'을 보면 아니라고 말해 줘야 한다. 나는 가을날 굶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술꾼 아버지에게 자란 맏이인지라 매우 엄하게 자랐다. 그래서 원치 않게 아이에게 혼찌검을 내주는 편이다. 변한 아빠의 표정에 아이는 늘 울어 버리고, 그래서 엄마가 투입되어 되려 내가 혼찌검이 나면서 끝을 맺지만 말이다.
앞선 글에서도 말한 것 같지만 아이의 실수와 실패는 되도록 일찍, 내가 있을 때 경험하기를 바란다. 또한 아이의 자잘못도 많이 경험하게 해서 옳고 그름을 알려주고 싶다. 여기서 방점은 '내가 있을 때'이다. 병이 난 적 있는 아빠는 늘 '언젠가 일찍 갈지도 모른다'는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 해서, 뭐든 마음이 바쁜 편이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자잘못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라이언의 말대로 신의 선물같은 아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잘못은 고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해 줘야 해서다.
주의할 점은 혼을 내주다가 내 감정이 실리는 것과 뜻하지 않은 아이의 리액션에 나의 화가 에스컬레이트 되는 상황을 만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조심하지만 그게 영 쉽지 않아서 아내에게 혼찌검이 난다. 나도 옛날엔 우리 부모한테는 신의 선물이었는데 말이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