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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한진 Jul 19. 2024

ep.27 동네 펍에서 혼쭐나고 동네 펍으로 힐링하다

다양한 모습의 런던 펍들

#사진을 클릭하면 커져요!
#그리고 다시 누르면 작아져요!



이사를 완료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짧은 고심 끝에 답을 찾았다.

저녁에 동네 펍을 가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펍의 나라 영국에 왔는데 한 번을 안 가볼 수는 없지.

간단한 검색을 했다.

방에 아마존 알렉사 단말기가 있어 그녀에게 근처 펍을 물어보았다.

그녀가 읊어준 리스트에서 인기가 있어 보이는 곳을 골랐다.

구글맵으로 찾아보니 마침 집이랑도 엄청나게 가까웠다.


그 장소는 바로 '프린스 오브 페컴(Prince of Peckham)'.

이름부터 동네 터줏대감 느낌이 낭낭하다.

기대와 두근거림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거기는 내가 상상한 런던의 동네 펍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용한 동네 술집보다는 홍대나 강남의 클럽에 가까웠다.

건물 밖으로 음악소리와 번쩍번쩍 화려한 조명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알렉사가 추천을 제대로 해주긴 했나 본지 인기가 많은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일단 입장 줄이 있었다.

입장 줄이 왜 생기냐면 입장하기 위해서는 펍 시큐리티 요원의 보안검사를 마쳐야 하기 때문.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침을 꿀꺽 삼키고 줄을 섰다.


금방 내 차례가 오고 내 여행용 배낭을 열어보였다.

대영박물관 이후로 가방 검사를 할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동네 술집에서 가방 검사를 받다니.

그리고 그들은 곧 내 생수병을 문제 삼았다.

단순 영업을 위해 외부음료 반입이 안 되는 건지 약물이나 이런 문제 때문인지는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호랑이굴 입구에서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 와서 저 안쪽 요지경을 확인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빈 물병은 괜찮냐고 물어본 다음 그들 앞에서 원샷 한 다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펍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후회했다.

그곳은 나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줄을 서서 들어가는 만큼 내부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96% 정도의 손님이 모두 흑인 손님이었다는 점.

그들의 옷차림과 드러나는 흥을 보면 동네에서 논다 하는 흑인 형, 누나들이 모조리 모인 것 같았다.

펍 문을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페컴이라는 동네가 흑인들의 밀집 거주지역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배움의 기쁨도 잠시 뿐이고 나는 내 거처를 정해야했다.

흥이 폭발하다 못해 야생적인 파티 분위기에 작고 귀여운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기에 눌려 돌아간다면 지는 것 같아 자기 위안 삼기 위해 맥주라도 한 잔 먹고 돌아가기로 했다.

용기를 내어 맥주를 주문하러 갔는데 사람이 너무 미어터져 바 구역은 손님들이 이중, 삼중으로 몰려 주문을 하고 있었다.

차마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정신이 쏙 빠진 채로 가게를 나왔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펍의 사진을 찍은 것이 오직 한 장뿐이었다.

나는 결국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다음 날 지나가면서 찍은 프린스 오브 페컴의 외관 / 저녁이 되면 나타나는 화려한 내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왓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갔다.

패잔병의 무거운 발소리는 유독 어두운 밤거리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다 나는 작은 펍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까 프린스 오브 페컴으로 갈 때에도 분명 지나친 길이었지만 그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프린스 오브 페컴과 비교하면 외관 모습부터 안심이 되는 곳이었다.

이름은 '더 카퍼 탭(The Copper Tap)'.

클럽 같은 분위기가 아닌 내가 그리던 펍의 모습에 가까웠다.

나는 애초에 그곳이 목표였던 듯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안정을 되찾았다.

일단 귀가 터질 것 같은 음악 소리가 없었다.

어둡고 포인트 조명이 강했던 아까의 펍과 다르게 이곳은 어둡지만 따뜻한 조명과 원목 가구들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바에는 백인 누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프린스 오브 페컴과 다른 점은 모든 손님들이 백인 남성들이라는 점이었다.

바로 인근의 펍이지만 손님층이 극명히 다른 것은 정말 신기했다.

노는 물이 다르다고나 할까.


이곳이라면 내 몸을 맡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파인트 한 잔을 주문했다.

금세 시원한 맥주가 내 앞에 놓였다.

스크린에 골프 방송이 틀어져 있는 것이 아버지 생각이 나며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프린스 오브 페컴에서 놀란 패잔병의 가슴이 진정되었다.

여기서 다른 아저씨들처럼 조용히 음주를 즐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까와 반대의 모습이다.
백인 남성들의 페컴 속 휴식처




ep.2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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