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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해서

by 릴랴

결국 우리는 괴롭다는 말 한마디를 진심으로 내뱉지 못해서 속에서부터 죽어가는 걸지도 몰랐다. 끝없이 안으로 좀먹어가다가 꺼져가는 거였을까.


정신이 온전하게 유지가 안되는데도 어쩌다 말을 꺼내게 된 누군가에게 납득이 되게 설명해야 하는 감각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말하지 않은 수많은 우울한 말들이 속에서 축척되고 쌓여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었다.


그때에 이제 이유 같은 건 설명하지도, 생각조차 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야.



우울한 감정, 슬픈 감정, 어쩌면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과 조금 떨어진 시선으로 분리하는 느낌으로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꽤 아름답지 않은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진다면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타인이 내게 제공한 악의와 내가 타인에게 가진 악의, 그걸 느끼게 된 자질구레한 경위와 덕지덕지 붙은 설명들 그리고 나를 방어하기 위한, 또는 합리화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말들.


그걸 떼어놓은 감정 그 자체를 바라본다는 건 생각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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