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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Mar 19. 2024

초밥이 매워서 우는 건지, 슬퍼서 우는 건지

사장님 앞에서 울었다

지난주 월요일, 사장님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호출하셨다.

몇 명의 중간관리자와 함께 회의실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말씀을 안 하시고 한참 뜸을 들이니, 긴장감은 더 고조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긴 침묵과 어색한 안부인사 끝에 한 마디 하신다.

"새로 오신 리더분께서 회사를 떠나시기로 결정하셨어요."


뜨악!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 1월 글에서 언급한 대로, 긴 공백기 끝에 새로운 리더가 오신 지 두 달도 안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https://brunch.co.kr/@rim38/100

새로운 리더 분은 한 달 만에 사직 의사를 밝히셨고, 이후 사장님을 비롯한 여러 글로벌 하이레벨이 만류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계속 있는 것이 조직에 더 안 좋을 것 같다며 최종 결정을 내리셨다.

그동안 여러 명의 보스와 인연을 맺었지만, 만남이 이토록 짧았던 적은 없었는데...

게다가 인수인계 기간도 없이 일주일 후에 떠나신다고 했다. 

하필이면 지난주에는 글로벌 하이레벨이 한국을 오는 일정까지 겹쳐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하시고 갈 예정이라며, 직원들에게는 그때까지 퇴사를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


아! 정말.... 어이가 없고 놀라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 도중, 갑자기 도시락이 사람들 앞에 놓였다. 

점심시간에 급하게 잡은 미팅이라, 사장님께서는 나름 직원들을 챙긴다고 미리 비서분을 통해 도시락을 주문해 놓으셨던 것 같다.


"우리 점심 먹으면서 다시 얘기해요."라는 사장님의 한마디 말에 모두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오늘의 메뉴는 평소 먹기 힘들었던, 고급 참치 초밥.

입맛이 없어 도시락을 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사장님과의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는 먹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인 상태로 먹는 행위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모르게 '으악' 하며 작은 신음이 나왔다.

앗! 와사비가 나의 후각과 미각 신경을 마비시키며 얼굴을 자동으로 찌푸리게 만든다.

나만 이런가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맞은편에 앉은 사장님도 갑자기 얼굴을 살짝 돌리며 입에 대고 손부채를 부치신다.

옆에 앉은 동료들도 눈물을 찔끔씩 흘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인가!

리더의 퇴사를 얘기하는 시점에, 초밥을 먹으며 흘리는 눈물이라니.

초밥이 매워서 우는 건지, 리더가 떠나는 게 슬퍼서 우는 건지 도통 헷갈린다.

와사비를 듬뿍 넣어 주신 초밥집 사장님의 센스와 미래를 내다봤던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된다.




새로운 리더는 어제 오후 늦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이 조직을 떠나셨다.

그리고 슬퍼할 틈도 없이 새로운 조직 개편 발표가 바로 이어져 사람들이 술렁댔다. 

게다가 글로벌 사람들은 한국을 왜 이리 좋아하는지, 다음 주에 또 하이레벨이 온다고 바로 준비를 하란다.

리더의 퇴사를 애도할 시간도 여유도 주지 않는, 조직의 냉정한 생리...


흔히 리더나 보스를 '우산'이라고 표현한다. 아무리 보스와 사이가 안 좋더라도, 보스가 형편없더라도, 우산이 아예 없어져보면 그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된다.

나 역시 찢어진 우산이라도 내 위에 뭐라도 씌워져 있었으면 좋겠다 소망하지만, 당분간 이루기 힘들 것 같다.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견뎌야 하는 이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빌어본다.


아! 이번 주는 코가 찡하고 눈물이 찔끔 나는 와사비맛 한 주가 될 것 같다.


#몹쓸 글쓰기 #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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