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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Nov 10. 2019

내 요리에는 없고, 사찰요리에는 있는 것


왜가 있는 요리

스물 남짓의 사람들을 앞에 두고 스님이 시연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하루는 시연을 보이던 스님이 갑자기 "왜 김밥 위에 깨를 뿌릴까요?"하고 물었다. 다들 입안 가득 깨를 머금은 마냥,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들기름에 야채를 볶으면 굳이 깨를 안 뿌려도 되는데, 보통 습관처럼 깨를 뿌린다는 게 스님의 대답이었다. 대답 치고 시시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물음이었고, 그런 물음은 계속 반복되었다. 호박과 당근 중 어느 것을 먼저 볶을까요? 굵은소금과 가는소금 중 어느 것을 쓸까요? 이럴 때는 조청을 써야 할까요, 물엿을 써야 할까요? 설탕이 꼭 몸에 나쁠까요? 왜 이 요리에는 이러한 재료를 쓰고, 왜 이러한 양념을 곁들여내는지, 대체할 재료는 없는지, 같은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다른 요리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배우고 들었다. 한번 수업을 듣고 나면 머릿속에는 온통 왜왜왜왜 메아리가 울렸다.


그동안 내게 요리는 늘 결과였다. '모로 가도 서울면 가면 된다'였다. 서울, 안되면 서울 근처까지 어떻게든 갔다고 믿는다. 그동안 사모은 요리책이 백여 권을 훌쩍 넘으니, 웬만한 요리 지식이라면 내게도 있었다. 사찰요리에 내가 몰랐던 대단한 비기나 비법이 있었던 것아니다. 그런데 사찰요리에는 '왜'가 있었다. 어쨌든 서울로 가려는 내게 사찰요리는 '왜' 서울에 가는지를 고요히, 끊임없이 물었다. 그 '왜'에 대한 답을 나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자꾸만 수업을 들으러 갔다. 처음엔 한 달에 한번 가던 것이 한 달에 두 번이 되고, 일주일에 두 번이 되고,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이 되기도 했다.



기준이 없는 요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맛이 있다. 맛의 표본이랄까, 기준점이랄까 하는 것들. 검색창에 '시금치 무침' 하나만 검색해도 연관검색어에 백종원, 김수미 레시피가 뜬다. 레시피만 따라 하면 간단하고 안전하게 백종원, 김수미 손맛을 흉내 낼 수 있다. 평타는 치는 셈이다. 그런데 '왜'가 끼어들 자리가 빠진다. 왜가 빠지면 집중할 게 결과밖에 없다. 레시피만 믿을 수밖에. 레시피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넣으라는 거 다 넣었는데 실패할까 봐 초조해진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결과물이 썩 좋지 않을 때, 스님이 요리한 것과 내가 한 것을 비교하면서 "왜 하라는 대로 했는데, 저 맛이 안나지?" 하고 번번이 의문에 잠겼다. 그럴 때마다 스님이 원인을 정확히 알려주셨다. 팬에 기름을 적게 둘렀거나, 처음부터 불을 세게 했거나, 반죽이 너무 되거나 혹은 질거나, 소스에 물을 많이 잡았거나. 그런데 스님들 중 누구도 "이건 실패했네, 맛없네"하고 말한 분이 없었다. 밑바닥이 탄 전병과 함께 내 마음도 시꺼멓게 타들어 갈 땐 "바싹 구워서 노릇하네요" 하셨고, 좀 싱거운 소스는 "담백해서 빈 속에 먹기 좋네요"하셨다. 스님들은 결과에 대해 너그러웠다. 처음에는 스님들이 마음이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수업시간마다 왜에 대해서는 집요한 질문이 쏟아졌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너그러움과 반복되던 질문의 이유를 알았다. 완성된 요리를 한 숟갈 떠먹고는 "스님, 맛있어요!"하고 엄지를 치켜들었더니, 스님이 세상 담백한 표정으로 "음식에는 맛있다와 맛없다가 없습니다."하고 답하셨다. 네? 음식에 맛이 없다고요? "음식은 맛있는 게 최고 아닌가요?"흔들리는 눈동자로 말없이 되묻는 내게, 스님이 음식은 '몸을 지탱하는 약'이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며, '양념'이라는 말도 재료의 성질을 보완하는 '약념'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니까 완성된 요리가 어떻든 간에(사찰요리가 맛이 없는 요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나의 실수도 넉넉한 평점을 받을 수 있었던 거다. 음식을 만들 때 가장 맨 앞에 두는 게 맛, 그러니까 혀의 즐거움이 아니라 몸을 두게 되면 자연히 왜를 묻고 따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재료는 왜 쓰고, 어떤 성질이 있고, 어떤 조미료와 궁합이 맞는지를.



마음 편하게!

요리 시연을 보일 때마다 손길이 한없이 여유롭고 느긋해서 오히려 곁에 서서 지켜보는 내가 초조할 지경인데, 어느새 요리는 완성되어있고 맛 또한 기가 막힌 스님이 한 분 있다. 스님의 요리비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많다. 하루는 어떤 분이 "스님처럼 이렇게 하면 맛있겠죠?"하고 물었는데, 스님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맛없으면 어때요, 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건데. 내 레시피 너무 믿지 말고 그냥 마음 편하게 하세요." 그 말이 마음에 좋았다.


지금도 새로운 재료로 요리할 때, 공정이 꽤 복잡한 요리를 할 때면 내 신경이 손에 쥔 칼끝처럼 날카로워진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지. 그럴 때마다 칼을 놓고 잠깐 생각한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일정한 맛의 결과를 뽑아내려고 하지 말자. 왜 이렇게 하는지 이유를 궁금해하고, 들여다보고, 그 과정 자체를 마음 편하게 즐기는 사람이 되자. 어차피 누가 먹는다? 내가 먹는다!


그러고 보면 요리와 삶은 꽤나 닮아있다. 섣불리 뭔가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남들이 말하는 정형화된 삶을 살려고 애쓰지 말고, 나라는 사람이 나로서 살아가는 날들의 순간순간을 들여다보고 궁금해하자. 마음 편하게 살자. 어차피 내 삶인데, 내 삶의 하루하루는 다 내가 먹는 건데. 나만의 레시피로 즐겁게, 요리하고 삶을 살겠다고 칼을 다잡는 도마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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