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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준 Apr 02. 2022

카포에라

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왔던 김정식은 강해지고 싶었다. 이제 학교 다닐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그는 괴롭힘 당할 일은 없어졌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싶었다. 김정식은 강해지기 위해 무술을 익히기 원했다. 그는 가까운 태권도장을 찾았다. 그 도장에서 1년간 태권도를 수련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련을 해도 태극 1장 노란띠 품새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를 가르치던 태권도 사범 최필두는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태권도는 한국에서 종주된 무술이기에 한국인의 체형에 꼭 맞게 기술이 발달해 왔습니다. 하지만, 김정식 씨의 체형은 한국인의 것이 아닙니다. 즉,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꼴이라는 거죠. 김정식 씨는 태권도가 아닌 서양의 무술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무술을 배워도 늘지 않으면 어떡하죠? 저는 강해질 수 없는 건가요?”

 김정식은 낙담하며 말했다.

 “김정식 씨는 태극의 원리와 음양오행적으로 봤을 때 태권도를 포함해 쿵후, 태극권, 무에타이 등 동양 무술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10년을 배워도 아무 소용없어요. 김정식 씨는 이와 철저히 대극에 있는 서양의 무술, 그중에서도 중에서도 카포에라를 배워야 합니다. 불쑥 튀어나온 배와 길고 가는 팔다리를 보세요. 누가 봐도 전형적인 마르크스적인 체형이죠.”

 태권도 사범은 자신의 옛 친구라며 김정식에게 카포에라의 대가, 박두식 사범의 연락처를 건네줬다. 

 국제 전화번호였다. 김정식은 전화를 걸고 말했다. 

 “소개받고 연락드렸습니다. 김정식이라고 합니다. 카포에라를 배우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브라질 상파울루로 날아오게. 그리고 거기서 파올렐리비아 도장을 찾아와.”

 카포에라 사범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정식은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파올렐리비아 도장을 찾아왔다.

 “자네가 김정식이구먼. 얘기는 잘 들었네. 딱 보니 왜 최 사범이 이곳으로 찾아오라 했는지 알겠군. 자넨 카포에라를 하기 위해 태어난 몸이야.”

 박 사범이 말했다.

 “카포에라는 춤, 무술, 음악이 결합한 전통 무술이다. 카포에라의 정신부터 가르쳐 주는 도장은 전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하지.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고된 수련에 들어갈 테니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게.”

 다음날 김정식은 아침 일찍 도장을 찾아왔다. 도장 사무실로 가니 최 사범이 계약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사인하게.”

 “아니, 이게 무슨 계약서입니까?”

 김정식이 물었다.

 “노예계약서라네. 카포에라는 기본적으로 흑인 노예들의 무술. 아프리카 노예들이 무술 수련을 금지당하자, 춤 동작을 빌려 무술로 녹여낸 것이지. 따라서 제대로 카포에라를 배우기 위해서는 노예의 심정을 이해해야 하네. 이것이 카포에라의 첫걸음이지. 이 계약서는 7년간 버지니아주의 담배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노예계약서네. 1700년대 흑인 노예들이 그랬던 것처럼, 담배, 목화, 그리고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부당한 노역을 통해 ‘노예의 한’을 기르는 것이지. 이것이 완성될 때 비로소 카포에라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거네.”

 “알겠습니다. 그럴 각오도 없었다면 저는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죠.”

 김정식은 순수히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그는 철저한 노예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백인 감독관은 철저히 노예들의 움직임을 감시했고, 조금이라도 노예들이 게으름을 피우면 가차 없이 채찍질해댔다. 카포에라를 배우러 온 다른 노예들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내 붙잡혀 사슬에 묶인 채 채찍질을 당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정확히 7년이 되던 날, 그들은 다시 파올렐리비아 도장으로 송환되었다.

 “어떤가? 이제 노예들의 마음을 이해했는가?”

 최 사범이 말했다.

 “네, 사부님, 저는 노예였고, 노예의 마음을 얻어 돌아왔습니다.”

 김정식이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악기를 배우도록 하겠네. 카포에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음악. 음악이 없다면 카포에라도 존재하지 않지. 마치 싸대기 없는 막장 드라마를 생각할 수 없듯이, 양념 빠진 양념 통닭을 생각할 수 없듯이, MSG 빠진 라면을 생각할 수 없듯이 카포에라에서 음악은 필수 불가분 한 요소라네. 카포에라 대련에서 경기를 주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음악을 주도하는 자. 지금부터 카포에라 악기 삼대장이라 불리는, 베림바우, 판데이루, 아타바키를 배우도록 하겠네. 악기별로 3년간 수련을 하면 마스터할 수 있을 거네. 참, 악기 비용은 개별 구입이고, 수강생 20% DC가 있으니 참고하게.”

 김정식은 필사적으로 악기를 연습했다. 그리고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김정식은 베림바우로 5/4박자, 7/4박자 8/12박자까지 연주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음, 훌륭한 연주군. 악기가 울고 있어. 정말 한 맺힌 연주였네. 자네의 연주에서 16세기 노예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네. 이제 본격적으로 카포에라의 기본 수련 단계로 들어가도 좋겠어. 카포에라의 동작은 기본적으로는 춤 동작이라네. 따라서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룸바, 차차차, 삼바, 자이브, 파소도블레 등 모든 라틴댄스 동작을 배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네. 지금부터는 춤 강습에 들어가겠네. 5년만 배우면 모든 동작을 무리 없이 익힐 수 있을 거야.”

 최 사범이 말했다.

 김정식은 5년간 라틴댄스를 익혔다. 내친김에 왈츠, 탱고, 폭스트롯과 브레이크 댄스까지 모두 마스터했다. 모든 춤을 섭렵한 김정식은 최 사범에게 말했다.

 “사부님, 이제 카포에라를 알려주십시오.”

 최 사범이 말했다.

 “그래,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이제 너는 카포에라를 배울 수 있는 기초 소양을 다진 걸세. 이제 본격적인 무술, 실전 카포에라를 배울 차례네. 자, 여기 번호가 있네, 내 친구 홍 사범일세. 이제부터 그에게서 수련할 것이네. 이만 하산하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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