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주말을 잘 보내기 위해 (다채롭게 번져가는 내 마음도)
앞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쉬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독서와 등산을 겸하는 모임에 발을 담가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 얘기도 나눴고, 번개로 서울 외곽의 산도 다녀왔다. 혼자였다면 해보지 않았을 등산이었다. 멤버들과 함께 난생처음 야등도 했다. 덕분에 시시각각 변하는 해 질 녘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어느덧 나는 혼자 보내는 주말이 더 익숙해졌다. 20대 때, 주말마다 이 친구, 저 친구 불러내서 공연을 보고 이곳저곳 놀러 다니던 때와 달라졌다. 그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했고, 육아를 하거나 주말이면 남편 혹은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갔다. 주말 약속이 드문 지금, 이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동호회에 참여한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따라온 것 말고도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이유도 있을 테니까.
가볍게 만난 사이여서 그런지 서로 얕은 대화가 오고 갔다. 나도 적당히 내 모습을 꾸며서 보여주었다. 어쩔 때는 자신이 더 보여주고 싶은 걸(직업이든, 사는 곳이 든) 말하며 은근한 과시들을 주고받았다. 숨기고 싶은 것이나 깊은 이야기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나 이만큼 알아요.'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게 나쁘다고 쓰는 것도 아니다. 나도 그러고 있었다.
어느 날은 이런 가벼운 만남과 흘러가는 이야기들에 현타가 왔다. '내 시간을 왜 여기에 쓰고 있지?' 친한 친구들처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었다. 왜 서로 간을 보면서 얕게 만나고 있을까 싶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조금 친해져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으나, 이 과정도 재밌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껏 여초사회만 있었다. 동호회에는 성비도 고르고 평소에 만나기 힘든 다양한 직업군들이 모여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그러니까 어떤 다른 만남의 가능성도 열려있다. 혼자의 주말을 잘 보내고 싶다고 했지만, 나도 새로운 사람 만나고 싶어서 왔다. 그래서 이런 애매모호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둔 모임에 때론 긴장감도 생기고 자극도 받고, 설레기도 했다.
이런 감정들을 느끼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반가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칭 작가모드라며 집-도서관을 전전하며 운동복만 입고 다녔던 나였다. 갑자기 거울에 비친 내 흰머리들이 신경 쓰였다. 이후 염색을 했고 눈썹도 다듬었다.
재미있게도 누군가에게 들었던 호기심도 얕게 왔다 갔다 하며 날아다녔다. 특정한 대상이 마음에 들어서 꼬시고 싶다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대상에 초점이 가는 게 아니라 이쪽저쪽 옮겨 다니는 내 궁금한 마음을 보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시간이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맡겨보자 싶었다. 해 질 녘 하늘처럼 내 마음도 시시각각 다채로웠다.
전에는 Yes or No. 이런 마침표 딱 닫친 문장을 좋아했다. 새삼 열어둔 채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도 재밌구나 싶었다. 다음 모임에는 더 편안하고 솔직하게 임하고 싶다. 굳이 뭘 치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다. 그렇다고 굳이 tmi를 붙이지는 말고.
나 홀로 주말을 잘 보내보려 이것저것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하는 것은 글쓰기다. 그렇다고 늘 즐겁지만은 않다. 때론 엉덩이가 들썩거려 사람들과 수다 떨러 가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고심하고 글을 쓰다가 마침표까지 딱 끝맺음하고 집에 돌아가는 날들이 있다. 그 차오르는 기쁨을 뭐라고 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내 나름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덧붙이는 나의 TMI
예전에는 내 직업에 대해 숨기려고 했다. 불특정다수의 모임은 물론이 거와 미용실을 갈 때도. 교사라는 직업은 어쨌든 전 국민 모두 지켜본 직업이지 않은가(모두 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으니까). 그래서 갖는 편견과 선입견들이 불편했다. 그래서 드러내지 않았다.
요새의 나는 직업은 교사며, 지금은 쉬고 있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다. ‘정말 선생님 하실 것 같아요. 말투도 표정도.’ 이런 반응이 옛날엔 싫었다. 이제는 뭐 그렇게 보나보다 하고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글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내 모습도 굳이 가리고 싶지 않다. 그런 작은 나만의 변화들을 볼 때면 또 스스로 대견하달까?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내 마음도 시간이 흘러가며 다채롭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