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짓는 마음>의 아홉 번째 시어(詩語)는 "무리"입니다.
지금까지 연재 글을 쭉 따라와서 보신 분들은 오늘은 어떤 무리수를 두려나 궁금해하면서 이 글을 열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어느덧 연재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요. 연재를 시작할 때, 마냥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또 그렇게 무거운 마음도 아니었습니다. 좋은 시로 한 상 차려놓고 살짝 숟가락 얹는 모양새가 되겠거니 했는데요. 요리는 사 왔어도 밥 짓고 국 데우고 그릇에 담는 정성이 필요하더라고요. 능력에 부치지만 없는 살림에 성의껏 차려 내고 있습니다. 그간 무리해서 상 차렸다고 생색내면서 <무리 짓는 마음> 편 시작합니다.
무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짐승, 사물 따위가 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입니다. 무리 지어 사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혼자 사는 것이겠지요. 혼자인 삶을 들여다보는 첫 번째 시 감상하시겠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었지만
행복 속에 안녕이 없네
나는야 뭉게구름 같은 숲 가녘에
안내인마냥 외따로 선
키 큰 소나무 한 그루 사랑했지만,
그 나무 오징어 다리 같은 뿌리 내놓고 길게 쓰러졌네
혼자 있는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자
무엇이든 저지르고 마는 자이네
그의 몸은 그의 몸 이기지 못해
일어나지 않는 몸,
기필코 자기를 해치는 몸이네
이 독방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독방
현관문 열고
방문 열고 들어서면
더 들어갈 데가 없는 곳에,
그러나 더 열고 들어가야 할 문 하나가 어디엔가
반드시 숨어 있을 것 같은 곳에
쓰러지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기어다니지 않아도 되는
더 단단한 독방 하나, 나는 믿었지만
그 꿈 같은 감옥
불 켜면 빛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 타는 듯한 벌판에서 눈 감는 사람은
또다시 문밖에 누워 잠드는 사람이네
이영광, 『아픈 천국』, 창비, 2010.
이영광(1967~ )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픈 천국』에 실린 작품입니다.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었지만/ 행복 속에 안녕이 없네"에서 '행복'과 '안녕'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혼자 있는 자'를 상징하는 '키 큰 소나무 한 그루'는 쓰러지고 '자기를 해치는 몸'이 되어 그의 행복에는 안녕이 없습니다. 혼자 가는 길이 '독방' 혹은 '감옥'으로 묘사됩니다.
시인에게 행복과 안녕은 무엇일까요. 한 인터뷰에서 그는 시인이 된 이유에 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어려서 늘 뭔가 나한테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을 했어요. 일찍 집을 떠나서 자취생활을 했고, 그러다보니까 없는 게 많아서 아마도 그 없는 것이 보상되었으면 하는 차원에서 글쓰기를 한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자주 하는 얘기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1979년이었는데 그때 연말 10대 뉴스를 찾아보면 돼지 파동이라는 게 있어요. 저희 집이 농사만 지어서는 못 사니까 돼지를 200마리쯤 기르고 있었는데 돼지 파동이 나서 집안이 망했어요. 정신이 박힌 중학생이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지, 이런 생각을 함직도 했는데 그러질 않고 노트를 한 권 구해서 시 비슷한 것을 쓰기 시작했어요. 3년이 지나서 1982년에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 연말 10대 뉴스를 찾아보면 소 파동이 일어난 게 있어요. 돼지 키우다 망한 집이 다시 재기를 하려고 소를 잔뜩 기르고 있었는데 소 파동이 나서 또 집이 망했어요. 그런 게 다 저한테는 어떤 모자람이고 가난이란 것이 결핍이었는데, 그런 걸 채우려는 의식적 작용이 있었던 것 같고요.
또 하나, 저는 왜 제가 시를 시작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어요. 그때 고등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신흠이라는 시조를 배우고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에요.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 닐러 다 못닐러 불러나 푸돗던가 / 진실로 플릴거시면 나도 불러 보리라" 시를 지으면 시름을 풀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제 인생이 시름겨웠는데 "야, 이건 내 얘기가 아닌가. 그럼 한 번 해볼 만하다." 그 석 줄이 화살처럼 가슴에 날아와서 꽂혔어요. 아마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그 고등학교 2학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2015년 인터뷰)
어린 시절 시름겨운 인생을 시로 풀고 싶었던 이영광 시인은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까지도 시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독방>이 실려있는 시집 『아픈 천국』에는 <유령> 연작시가 실려있습니다.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상징하며, 폐지 줍는 노인, 대리운전 아줌마, 용산참사 희생자 등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독방>은 시를 쓰는 행위가 인생의 시름을 풀기 위한 방편이었고 행복을 찾기 위한 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시인이 바라는 안녕은 자신이 경험했던 결핍이 해소되고 주변인들이 비슷한 아픔을 경험하지 않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삶에는 안녕이 없다지만, 무리에 속해 사는 삶도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무리 지어 살다 보면 집단 간에 분쟁이 생기니까요. 이영광 시인이 말하는 분쟁 해결 방법을 들어볼까요. 두 번째 작품 감상하시겠습니다.
콩가루 집안도 싸움 나면 뭉치고
툭탁거리던 아이들도 딴 학교랑 축구하면 함께 응원을 한다
딴 동네 딴 도시 딴 지역과 다툼이 나면
한 동네 한 도시 한 지역이 된다
전라도와 사이가 틀어지면 경상도가 된다
경상도에 맞설 때면 전라도가 된다
북한과 다툴 때는 남한이 되고,
월드컵만 열렸다 하면 아우성치는 대한민국이 된다
그러므로 외계인이 쳐들어와야 한다
성간우주(星間宇宙)를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니는
외계 우주선들의 어마어마한 공습 앞에서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을 것이다
서방과 아랍이 연대할 것이다
아시아 제(諸) 국가들이 단결할 것이다
외계인이 와야 한다
모든 국경이 폐제되고,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형제가 될 것이다
모든 호모사피엔스가 하나가 될 것이다
인간과 사자와 뱀과 바퀴벌레 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스크럼을 짤 것이다
더 큰 적이 나타나고 더 큰 싸움이 나는 수밖에 없나?
외계인이 와야 한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잿더미가 되지 않을까?
외계인이 와야 한다
전 지구 생명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외계인이 와야 한다
다른 별들에서, 지구촌을 전율에 빠뜨릴
초호화 축구팀들이 공격해 와야 한다
부처나 공자나 예수보다 더 환상적인
외계 스타플레이어들이 와야 한다
은하계 별들이 두두둥둥! 자웅을 가리는
우주 월드컵이 열려야 한다
이영광, 『끝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8.
선거철이라 더욱더 와닿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인류가 찾아 헤맨 세계 평화의 해답을 이 작품에서 찾습니다. 외계인이 오면 지구촌이 하나가 될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오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전 지구 생명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외계인이 와야 한다는 외침의 속뜻은 그런 외부 자극 없이도 평화로이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겠지요.
이영광 시인은 시집 『끝없는 사람』의 서문에 “우울은, 쓰게 한다./ 명랑은 그걸 계속하게 하고.”라고 썼습니다. <외계인이 와야 한다>에서 우울한 현실을 명랑하게 극복하려는 노력을 봅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화가 안 날 수가 있습니까.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요. 화날 때가 많습니다. 화를 그냥 내면 안 되니까 마음을 더 죽여서, 눌러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화를 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깊은 곳에서 크게 지르는 것, 이런 것은 그냥 길거리에서 소리치는 것과는 다를 것 같아요. 그런 상태를 마음에 조성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시도할 때가 있고요." (출처: 2015년 인터뷰)
이것저것 해본 시도에 이 작품에 포함되지 않나 싶습니다. 현실에 분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런 상상으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해 본 것이라고요. 이영광 시인의 말처럼 화를 그냥 내지 않고 "마음을 더 죽여서, 눌러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글로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겠습니다. 화가 날 만한 상황은 매일 뉴스에 가득하지요. 뉴스를 보고 답답해진 마음을 외계인을 떠올리며 다잡아봅니다.
무리 짓는 마음은 그들에게 손 내밀어 '우리'가 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양아치 같다고 하더라도 외계인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무리수인가요?
다음 주에 <시 짓는 마음>의 열 번째 시어, "미소"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