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짓는 마음>의 열 번째 시어(詩語)는 "미소"입니다.
이번에는 한국인 인증 시험입니다. 유명한 동요인데요. 원래는 동시였습니다. 제목이 무엇일까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 땡!
고향? 땡!
꽃피는 산골? 땡!
정답은 <고향의 봄>입니다.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지요. 이원수(1912~1981)가 1926년에 발표한 동시를 노랫말로 홍난파(1897~1941)가 곡을 썼습니다.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기 전 일제강점기에 발표되어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동요입니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을 미소 짓게 한 곡입니다.
제가 고향과 가족에 관해 쓴 글을 모아 놓은 매거진이 <그 속에서 놀던 때가>인데요. 제목을 뭐로 할지 고민하면서 검색해 보니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이 여럿 있더군요. 고향과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라는 데 사딸라 걸겠습니다.
광고 모델로 나오면 성공을 거둔다는 3B가 있습니다. Baby(아기), Beast(동물), Beauty(미인)입니다. 그중에서 아이의 마음을 담은 동시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과연 히트치는 글이 될까요? 빙구 미소를 지으면서 <미소 짓는 마음> 편 시작합니다.
동시(童詩)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입니다. 주로 어린이 독자를 위한 작품이지만 한때 어린이였던 성인도 독자가 될 수 있겠지요. 우리 마음속 어린이를 깨우는 첫 번째 동시 감상해 보실까요.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어디서 죽는 줄 모르는
하늘의 새
바라볼수록 신기해요.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어요.
나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임길택, 『나 혼자 자라겠어요』, 창비, 2007.
다람쥐와 새가 신기하지 않은 어른도 뜻을 곱씹어 보게 되는 시입니다. 길러지지 않고 스스로 자라겠다는 시적 화자 어린이가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쓴 임길택(1952~1997) 시인은 46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14년간 강원도 산골 분교와 탄광 마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79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초등학교에 부임해 학생들의 시와 산문을 모아 <나도 광부가 되겠지>(1980)를 비롯한 8권의 학급문집을 만들었습니다. 앞서 농촌과 산마을 아이들의 글을 시집 『일하는 아이들』(1978)과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1979)로 엮어 펴낸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임길택 선생님이 1980년대 초에 엮은 학급문집 일부가 2006년에 동시집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로 출간됐습니다. 64명의 어린이가 쓴 112편의 시가 실렸습니다. 그중 한편을 옮깁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광부로서 탄을 캐신다.
나도 공부를 못하니 광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난 이제 광부가 되었으니
열심히 일해야 되겠지만
너는 커서 농부나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고 하신다.
-6학년 최우홍
임길택 엮음,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보리, 2006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는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탄광 마을 가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가난한 삶 속에서 좌절과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책이 출간되고 이듬해인 2007년 5월 13일에 KBS스페셜 다큐멘터리 <길택 씨의 아이들>이 방송됐습니다. 중년이 된 시집 속 아이들을 찾아가 27년 전 학급문집을 건넸습니다. 그들은 학급문집 속 자신의 글을 읽으며 옛 시절을 추억하고 임길택 선생님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임길택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글에 담긴 그분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나는 누가 울 때, 왜 우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울 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울게 하는 것처럼 나쁜 일이 이 세상엔 없을 거라 여깁니다. 짐승이나 나무, 풀 같은 것들이 우는 까닭도 알고 싶은데, 만일 그 날이 내게 온다면,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덩실덩실 춤을 출 것입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 우는 것들의 동무가 되어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다만 한가지,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라면 아이, 어른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임길택, 『할아버지 요강』, 보리, 1995.
임길택 선생님은 약자를 사랑했고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동시와 동화, 산문을 썼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소를 주고 싶었던 그 마음이 다정하고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선생님의 산문과 교단 일기가 2004년에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로 출간됐습니다.
임길택 시인의 작품을 더 소개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분의 삶과 작품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분께 단비 작가님의 <그리운 임길택 선생님>을 추천해 드립니다. KBS스페셜 다큐멘터리 <길택 씨의 아이들>(2007년 5월 13일 방송)도 강력히 추천해 드립니다.
비에게서 슬픔을 본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이 비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비는 매일 운다.
나도 슬플 때는
얼굴에서 비가 내린다.
그러면
비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걸까?
비야
너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거지?
하지만
비야 너와 나는
어차피 웃음이 찾아올 거야
너도 힘내!
민시우, 『약속』, 가쎄, 2022.
소년은 눈물 흘리는 비를 위로하며 위로받습니다.
제주에 사는 민시우 군은 7살에 엄마를 잃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시로 써서 표현했습니다. 4학년까지 쓴 시를 모아서 시집 『약속』(2022)을 출간했습니다. '약속'은 엄마가 생전에 시우 군에게 "우리 언젠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한 약속을 말합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약속, 그리고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지켜내자는 약속"입니다.
시우 군의 이야기는 작년 여름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2023년 8월 9일 방송)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져 화제가 됐습니다. 아빠 민병훈 감독은 아이와 아빠가 상실의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약속>을 만들어 2023년 11월에 개봉했습니다. 시우 군의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감상하시지요.
하루는 끝이 있지만
영원은 끝이 없어
생명은 끝이 있지만
희망은 끝이 없어
길은 끝이 있지만
마음은 끝이 없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엄마는
언젠가 꼭! 영원히
만날 수 있어
민시우, 『약속』, 가쎄, 2022.
사색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상실의 아픔이 아이를 철학자로 만들었습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시우 군은 이제 엄마에 관한 시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시를 쓰다 보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덜어졌다며 또 다른 약속을 이야기했습니다. 불편한 분들을 배려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처럼 슬픔이 있던 분들이 위로받고 치유받을 수 있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시우 군은 어떤 시를 쓰게 될까요? 박채연 양처럼 꿈에 관한 시를 쓰게 될까요?
나는 부전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 1학년 박채연
어린이 103명, 『복숭아 한번 실컷 먹고 싶다』, 보리, 2014.
반전에 웃었지만 금세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살기 어려운 세상인 것 같아서요. 아이가 어른이 바라는 꿈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직진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치유와 위안이 되는 동시에 관해 이야기한 이안(1967~ ) 시인의 인터뷰 일부를 옮기며 글을 마칩니다.
동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힘든 시기다.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시는 치유의 기능, 위안의 기능을 갖고 있다. 시가 갖고 있는 치유의 기능과 함께 동시는 사랑의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존 시인들 가운데 동시를 쓰는 시인 상당수가 자식이나 손자, 손녀를 위해 쓰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어린이라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다. 동시를 쓰는 시인은 절망을 희망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과정을 반드시 겪는다. 그 과정을 통해 쓰는 사람도 치유가 된다. 자연스럽게 동시는 가장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겠나. 동시를 읽다 보면 독자에게도 치유의 과정이나 희망의 과정이 전달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에너지가 담긴 시를 아이와 함께 읽자. 그뿐만 아니라 부모가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감성이나 리듬감, 이미지를 떠올리는 능력, 언어에 대한 감각 등 동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많다.”
이안 시인 2016년 인터뷰 (출처: 한겨레신문)
브런치에는 자신의 절망과 아픔을 드러내어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빛을 주려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귀한 마음을 마주할 때면 살포시 미소 짓게 됩니다. 어둠을 딛고 빛이 되어주신 분들께 미소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김응 시인의 <꽃>을 드립니다.
꽃이라고
다 같은 꽃이
아니다
어떤 꽃씨는
기름진 땅에서 태어나
꽃을 피우지만
또 어떤 꽃씨는
절벽을 붙들고 태어나
꽃을 피운다
김응, 『둘이라서 좋아』, 창비, 2017.
누구나 마음속에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로 적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어린이의 마음, 그 속에서 놀던 때로 돌아가 볼까요.
다음 주에 <시 짓는 마음>의 마지막 편 <매듭짓는 마음>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