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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요 Oct 05. 2022

서른 살에 엄마 아빠와 친해지기

#2. 자랄수록 멀어지는 우리

엄마가 잡아주는 보조 바퀴 달린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날을 기억한다. 날이 꽤 추웠다. 엄마와 나는 두꺼운 파카를 입고 나갔다. 엄마는 안장 뒤에 달린 손잡이를 밀며 달리다가, 어느새 손을 놓았다. 추운 날 몇 번을 숨 가쁘게 달린 끝에, 나는 자전거 홀로 타기에 성공했다.


어떤 날은 새벽에 잠에서 깨 엄마를 찾으러 나갔다. 단지 밖으로 나가서 서성거리니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엄마에게 데려가 주겠다 해서 차에 탔다. 천만다행으로 옆 단지 경비아저씨가 차단기를 열어주려다가 나를 알아봐 유괴범 차에서 내렸더랬다. 경비실에 보호되어 있던 나를 찾으러 사색이 되어 달려왔던 엄마 얼굴을 기억한다.


아빠 낚시를 구경하러 갔던 날을 기억한다. 아빠가 잡아 둔 물고기를 보려고 그물망을 뒤적거리다가 물고기가 다 빠져나가고 말았다. 놀란 아빠가 급히 물고기들을 건지려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결국 물고기는 다 놓치고, 아빠는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아빠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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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랄수록 멀어지는 우리


엄마 아빠와의 추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어린 시절에서 엄마 아빠를 찾기는 어려웠다.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이 생각난다. 외할아버지에게 배운 동전 마술, 외할머니 이름으로 외상 달고 노포에서 사 먹던 호떡과 어묵, 대문 앞에 앉아 언덕길에서 내려오는 고등학생들을 보며 하염없이 이모들을 기다렸던 일, 맞은편 목욕탕 집 손녀와 그 옆집 소년과 함께 기름통에 모닥불을 피워 불장난을 쳤던 일.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보고 싶은 엄마 아빠가 없는 여섯 살의 일상은 외로움으로 가득했다.


자랄수록 엄마 아빠와는 멀어지기만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빠 얼굴은 보기 어려웠다. 아빠가 해외에서 사다준 각종 선물과 책들은 많았다. 우리 집은 꽤나 풍요로웠다. 아빠는 그 부요함을 지키기 위해서 바빴던 듯싶다. 엄마는 동생이 태어난 후 전업주부가 되셨다. 그렇지만 엄마도 집에서 보기는 어려웠다. 학교 다녀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곤 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일이었다. 학교 마치고 나왔는데 비가 우르르 쏟아졌다. 친구들과 학교 현관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 하나둘씩 엄마들이 왔다. 친구들은 엄마 품에 쏙 들어가 함께 우산을 쓰고 집으로 떠났다. 그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엄마도 와 줄까?'


잠깐 생각하다 학교에서 달려 나가 근처 마트 앞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갔다. 빗속에서 뜀박질을 하자 몸에 열기가 생기면서 동시에 용기도 조금 생겼다. 과감하게 동전을 넣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야!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혹시 우산 들고 나와 줄 수 있어?"


짜증 섞인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어휴...... 무슨 비 온다고 학교까지 오 라그래! 그냥 버스 타고 와!"


짧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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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엄마가 육아를 그리 즐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여덟 살 일 때였다. 아빠의 사업 부진으로 일을 찾던 엄마가 보육교사 공부를 시작했다. 어느 날 집에 온 엄마가 나를 붙잡고 울며 말했다.


"네 동생은 내가 낳고 싶어서 낳았지만, 너는 아니었어.

너희 할머니랑 아빠가 빨리 자식을 낳기를 원해서,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너를 낳았어.

나도 어린 나이에 애를 낳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너를 이렇게 키웠다. 미안하다."


이해는 됐다. 스물네 살에 등 떠밀려 결혼한 우리 엄마. 시댁과 남편의 압박에 결혼하자마자 임신한 이십 대 여성. 육아를 전담하느라 경단녀가 되어버린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의 사과를 받아들이기에 나는 어렸고, 이미 오랫동안 쓸쓸했다. 여린 내 기질 탓도 있었지만, 워낙에 살가움이 없는 엄마였다.



다른 친구들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에 우산을 들고 나왔다. 어떤 친구들은 아침에 아빠가 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다. 친구들을 보면 엄마 아빠랑 친해 보였다. 친구들을 보다가 우리 가족을 보면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매정하지? 우리 아빠는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없지?'라는 생각이 백번, 천 번 들었다. 어린 시절 작은 상처는 염증이 되어 내 안에 고이고 부풀었다. 자랄수록 부모한테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얼른 빨리 커서 이 집 같지 않은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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