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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좋은 팀장이 아니었다. (2)

성과평가의 날

by 리유


그날 오후, 팀원들의 성과평가 1:1 면담 시간.


사실, 내가 상무님 앞에서 평가받는 사람일 때보다 그 부담이 두 배, 아니 열 배는 더해진다.

그냥, 그 자리가 불편하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았을 뿐인데, 내가 뭐라고 그들의 능력, 역량을 '평.가' 한단 말인가. 1년 365일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성과를 타인인 내가 100%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 순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수시로 기록을 해두긴 한다. 허나, 나 또한 인간인지라 주관적인 판단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거다. 아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더 한 사실이 하나 있다.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이 마주 앉으면 후자의 사람은 마치 갑을 관계의 '을'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그러한 미묘한 감정의 모양새가 거북하게 와닿는다. 평소에 수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 될 것을. 뭘 이렇게 회의실에 정자세로 앉아 등급을 매기기 위한 자리를 갖는단 말인가.

그래도 하긴 해야 한다. 그게 인사 제도인 것을. 따라야지. 암, 따라야지.




미팅 순서는 가장 면담하기 편한 분부터 어려운 분으로 정했다. 이 부담스럽고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에 워밍업을 하기 위해.


팀원 분들은 각자 자신의 성과 평가표와 메모해 둔 종이 한 장씩을 갖고 들어오셨다. 내가 미팅 전 준비해 달라는 안건들을 미리 적어온 것이다. '가장 잘하거나 뿌듯한 성과 3가지, 아쉽거나 개선이 필요한 것 3가지, 팀장에게 바라는 기대사항이나 어려운 점 등.'


그렇게 차장님, 주임님이 들어왔다 나갔다. 또 대리님이, 주임님이 나와 각각 삼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불편함, 즐거움, 뿌듯함, 아쉬움, 기쁨의 감정들이 오고 갔다.



마지막으로 이 과장님 순서. 말도, 표정도 가장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시간.

이 과장님 또한 생각을 정리해서 들어오셨다. 회의실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주 5일 동안 아침 인사를 하고, 같이 점심을 먹고, 미팅도 자주 하는데, 그렇게 만난 지 3년 째인데, 과장님은 부쩍 긴장감을 드러내신다. 매년 1월, 이 시간이면.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감이 바닥에 옅게 깔려 있는 듯한 작은 목소리, 경직된 말투, 두서없는 내용.


'아.. 과장님,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제발요..'

속으로 조용히 외쳐댔다. 대신,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긍정의 눈빛을 보내기 위해 애쓰면서.

그렇게 과장님이 정리해 온 문장들을 더듬더듬 모두 읽으시고 나서,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나도 얼른 화답을 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과장님 작년에 비해 교육 운영도 더 맡으셨고, 책임감을 갖고 완수해 내주셨어요. 일부 과정에서는 피드백도 좋았고요. 저도 그 부분은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마쳐서는 안 된다. 성과를 리뷰하는 자리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제 성과등급을 받았을 때 너무 충격을 받지 않으시도록. 무자비하게도.

표정을 조금 굳혔다. 나를 바라보던 과장님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입술을 한 번 꽉 깨물고 말을 이었다.


"저는 과장님을 작년보다 더 높은 등급으로 제출할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부문 전체 직원들의 경력, 성과 등을 고려해서 어떤 등급이 부여될지는 봐야 할 것 같아요. 평가 결과 나오면 다시 공유드리겠습니다.”


네.라고 짧은 대답을 내뱉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다는 너무나도 형식적인 말을 마지막으로 미팅이 끝이 났다.


끝.




이후, 이 과장님과 평가 결과를 통보하는 자리를 가졌고, 등급을 전해 들은 과장님은, 나와 단 둘이 앉아 있는 그 좁디좁은 회의실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하염없이, 정말, 하염없이…


그리고 나는, 조용히 그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라고, 한 사람의 속을 이토록 상하게 한단 말인가.


과장님, 과장님은 작년에 비해 정말 더 나아지셨어요. 부문 전체에서 등급 비율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거예요.

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거예요. 제가 옆에서 도와 드릴게요. 열심히 어필해 볼게요.

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냥, 조용히 나가서 휴지 몇 장 뽑아다가 가져다 드릴 수밖에 없었다. 같이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인정하는 저성과자 라면 나도 냉정하게 피드백할 수 있다. 매년 그래 왔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조차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이 모든 회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다.


한 개인은 분명 예전보다 잘하고 있는데, 예전보다 발전했는데, 그건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 닥친 리그에서 눈에 띄어야 한다. 특출 나야 한다. 그래야지만 인정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자가 되어 버린다. 그게 현실이다.


그날 과장님은 휴지를 손에 쥔 채 한 시간이 넘도록 앉아 계셨고, 나는, 회의실을 나서며 속으로만 말했다. 과장님에게 이 말이 꼭 닿기를 바라며…



‘과장님, 이것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평가 등급이 과장님의 자체,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을 평가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요. 너무 섣부르게 지금의 나를 평가해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요. 물론, 지금은 속상하고 힘든 건 맞아요. 당연해요. 하지만 나중에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았을 때, 이렇게까지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실 거예요.

왜냐하면 과장님은 분명 매일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과장님의 속도대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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