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애 Jul 11. 2022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택해다오.

-엄마의 외식 메뉴 정하기 투쟁기

“신애야, 너 왜 울어?”

남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우리 가족은 순대국밥 집에 앉아있었다.

‘아니, 분명히 나에게 먹고 싶은걸 이야기하라고 하고 오늘은 그걸 먹자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내가 말한 메뉴가 아니라 남편이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와서 앉아있다.   

  

나는 거의 모든 음식을 잘 먹는다. 이건 달아서 맛있고, 이건 시어서 맛있고, 이건 그냥 뭔지 모르게 맛있고. 다시 말해서 특별히 미각이 뛰어나지 않다고 해도 되고, 입맛이 무난하다는 표현을 쓸 수도 있다.     

우리 엄마는 내가 키우기 쉬웠다고 했다. 뭘 줘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으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하지만 나의 무난한 입맛 덕에 엄마의 음식 솜씨도 크게 늘지는 않았다. 

    

우리 아빠의 식성은 특이했다. 한 음식에 꽂히시면 같은 것을 한 달 동안 드셨다. 엄마가 끓여드렸던 ‘팥죽’이 맛있었으면 팥죽만 한 솥 끓여서 한 달을 먹었다. 아침도 팥죽, 점심도 팥죽. 외식을 할 때에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었다. 한 번은 과천의 어느 가게의 ‘갈비탕’을 드시고 와서 정말 맛있게 드셨다고 말씀하셨었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은 반년 간 외식은 무조건 거기로 갔다. 카레도 아빠가 맛있다고 하시면 한 솥, 누룽지가 맛있다고 하시면 그 후로 끼니마다 누룽지를 먹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큰 불평이 없었다. 그저 그러려니 했었다.  

   

결혼 후, 이번에는 남편의 입맛이 까다로웠다. 분명 결혼 전에는 나랑 같이 뭐든지 먹던 남편이 자기는 입맛이 좀 다르단다. 나는 회를 좋아하는데, 남편은 회를 좋아하지 않았다. 생선은 굽는 냄새도 싫고, 생선이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극혐’이라고 했다. 나는 역시 그 또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입맛이 무난했으므로 남편 쪽에 맞추어주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무난하고 상대의 입맛에 예민하지 않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남편의 행동은 서운했다. 그래서 다른 곳도 아닌 순대국밥 집에 앉아서 음식 앞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행동이었다.     

나를 서운하게 한 남편의 행동은 다름이 아니라 외식을 하러 나갈 때마다 습관처럼 늘 내 의견을 묻고 내가 대답하면 그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신애야, 뭐 먹고 싶니?”

이 질문을 들으면 처음에는 보통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머리를 굴려 답을 생각해 낸다.

“응, 카레가 먹고 싶네. 저쪽에 카레 가게가 새로 생겼더라고.”

그리고 입으로 답을 말하고 나서는 정말 그 음식이 먹고 싶어 진다.

그러면 남편은 그 음식이 별로 안 좋은 이유나 그 식당이 별로인 이유를 백만 가지 이야기해주었다. 우리가 가게 되는 곳은 결국 남편이 결정한 음식과 식당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서운하지 않았다. 남편이 먹고 싶은 것이 있나 보다 생각하거나 ‘내가 생각한 메뉴가 별로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나 반복하다 보면 사람이 열받게 되는 법. 나는 이럴 거면 왜 자꾸 내 의견을 묻는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고도 느껴졌다. 그 감정이 오늘에서야 빵 터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먹기 싫으면 나가자고.”

남편은 순대국밥을 압에 놓고 우는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화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나는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의 식사를 했다. 순대국밥을.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야 나는 남편이 기분 좋을 때를 노려서 이 일의 전말과 나의 기분을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남편은 공감해 주었으며 그 후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제, 남편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부작용이라면, 이번에는 물어봤을 때 한 번 대답을 하면 의견을 바꿀 수가 없다. 

“뭐 먹고 싶어?”

“음.. 카레?”

“오, 그렇구나. 저기에 새로 생긴 라면집이 있던데, 그럼 다음번에 가보자.”

“아, 그래? 그럼 이번에 라면집으로 가요.”

남편은 손사래를 치기 시작한다.

“아냐, 아냐, 아냐, 네가 먹고 싶은 카레 집으로 가자.”

헐. 이제는 의견을 바꿀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지금이 낫다.

이전 09화 영어 교사의 중국어 도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