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다스러운 곰 Jul 24. 2021

우주 먼지 여관 4장

시간의 선에서 내가 있어야 할 곳


                                                                    4     




<1>     


“이젠 확실하게 보지 못하겠어요.”

“당신 괜찮아요? 조금 피곤해 보이는데.”

“날 보았던 누군가는 날 봤다고 말하지 못해요. 나의 목소리를 전해도 그들에겐 잠시 머무르는 메아리인가 봐요. 어느새 내가 이 집의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다고 믿는 게 힘들어져가요. 심지어 이젠 내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가 내 눈 앞에서 나를 아는 체 인사를 하네요. 내가 정신병에 걸린 걸까요? 혹시 당신,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듣고 있긴 한 건가요?”

“듣고 있어요. 진정해요. 당신이 나를 모르는 건 당연해요. 아마도요.”


마릴은 머뭇거리다 빵 한 조각을 때어내어 천천히 바우에게 건넸다. 바우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자신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이 건너왔던 시간보다 더 천천히 자신의 입으로 옮겨가 가볍게 물었다.


“미안해요. 좀 쉬어야 겠어요.”

“난 계속 여기에 있을 테니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돌아와요.”

“당신이 여기에 있던 과거는 변하지 않는 건가요?”

“과거를 항상 떠나고 미래는 찾아오고 말죠. 다만, 멀리가지 않고 맴돌 테니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나를 찾아요.”

“......그렇군요.”


바우의 방이 열리고 닫혔다. 그러곤 다른 방이 열리고 백발의 노파와 어린 아이가 나왔다. 노인은 곧바로 옆의 서재로 들어갔고 아이는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마릴은 옆의 책장에서 두어 권 집어 고르는 중이었다. 플립은 그런 마릴을 한 번 슬쩍 보고는 전날 누군가가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술병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마릴이 뒤돌아본다.


“안녕?”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일찍 일어났네.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니?”

“아니요. 오늘은 약속대로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는 날이에요.”

“오, 그것 참 재밌겠구나. 어디 멀리 떠나니?”


플립은 병을 모아 바다에 내려놓고서 편하게 자리에 앉았고 마릴은 다가와 그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여행이 아니라 아버지 볼일 차 왕궁이 있는 대도시를 보러가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졸라 이번에는 동행하게 해 달라 부탁 드렸죠.”

“그렇다면 다음 주쯤 돌아오겠구나. 부인께서도 같이 가시니?”

“아니오. 두 분 다 자리를 비우실 순 없어서 어머니는 남아 계시기로 했어요. 아마 이번 기회에 엉망인 서재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겠다고 결심하신 모양이에요. 그것도 잘 된 일이죠”

 그리 엉망인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여행 중이시죠? 어떠한 계기로 전에 머물던 곳을 떠나셨나요?”

“글쎄 왜였을까. 눈에 비치는 모순에 진절머리가 나서였나봐”

“네? 그건?”

“내가 어디에 있다 어딜 보고 있든 그건 단지 앞이었어야 했어. 설령, 내가 고개를 돌려 본다고 해도 말이야. 내 뒤엔 무엇이 남겨져 가든 간에 나는 보면 안 된다. 그렇게 믿었었어. 내겐 유일한 혈육이던 할머님이 한 분 있었지. 내가 너처럼 꼬마였을 때 전쟁 통에 부모님 두 분을 다 잃어서 그분께 길러져 자랐어. 지금까지도 옆의 나라 계속되고 있는 그 분쟁의 시작점에서 말이야”     


<2>     


“세금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맞는 말이야. 이곳은 교회를 앞세워 무역에서 많은 관세로 이윤을 내고 있지만 이 나라에서는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인 종교개혁까지 나오고 있어. 그래서 지금 나라에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수도로 병력을 모으고 있는 거야. 너에겐 어려운 얘기일지도 모르겠네.”

“저는 선생님 얘기를 마저 듣고 싶은 걸요”

“내 얘기?”

“왜 선생님께서 아직도 시간의 모순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지요. 혹시 이런 질문이 너무 실례가 될까요?”

“.......알고 보니 내 부모님은 그저 전쟁통에 돌아가신 게 아니었어. 몇 년에 걸쳐 이어지는 흉작에다가 전염병도 돌아 마을은 꼴이 아니었지. 그럴 때에 새로운 세금을 명목으로 마을과 교회 사이의 긴장이 격화될 때였어. 그 전부터 교회가 특점 물품을 독점해 자기의 입맛대로 가격을 정하고 시장을 조작해 왔는데 드디어 일이 터진 거였지. 교회는 마을에 특혜를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하려 했다하지만 사실 마을의 지도자 몇 명을 포섭해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던 거야. 하지만 너무나도 강경한 입장을 들고 일어선 시민들은 잠재우기 어려워 보였을 거야. 그래서 교회 입장에서는 비밀스레 마을 사람들 속에서 자신들의 지지층을 만들 대변자들이 필요했지”

“설마, 그 사람들이라는 게.......”

“그래, 내 부모님들은 교회의 끄나풀이셨어. 그러나 도중에 누군가의 고발로 모두가 있는 마을 광장으로 잡혀가셨다는 것만 들었어....... 상황을 짐작하시던 할머니께서는 그날 새벽에 미리 준비해둔 마부와 함께 아직 잠에 깨지도 못한 날 데리고 떠나셨다고 해. 물론 그 일 뒤로 마을에 돌아가 본 적은 없어. 그 뒤에 화폐개혁이 일어났다는 얘기는 듣긴 했지”

“할머님께서는 앞에 계시려 했지만 뒤에 두고 온 부모님께 돌아갈 수 없어서 줄곧 마음에 짐으로 담아뒀던 거군요.”

“난 그렇게 마음속의 부정을 오랫동안 묻어뒀어. 그마저도 앞에 계시던 분께서는 내가 말릴 세도 없이 혼자 선로에서 벗어나셨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난 멀어지지 못한 채 계속 맴돌았던 거야. 결국 아직도 난 여기에 있어.”

“쉽지 않은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립은 마릴의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이층의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마릴은 불가에 앉아 책 한 권을 폈다. 잠시 후 노인과 플립이 내려왔고 나가기 전 마릴은 그와 가볍게 손 인사를 나눴다. 둘이 떠난 뒤 엔빌마가 호쾌하게 들어왔다. 장작을 확인하고 몇 개 넣을 뿐 별 말은 없었다. 이층에서 바우 부인이 내려왔다.


“그러고 보니 배웅을 하진 않으셨네요.”      

“이층에서 손을 흔들었답니다. 언젠가부터 였더라, 더 멀리까지 보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좋았던 게 벌써 수십 년이 흘렀네요. 호호, 무슨 책을 읽고 계셨나요?”

“무슨 물결이라는 단어가 나오네요. 엘빈? 어느 시대 저자죠?”  

“제법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죠. 많은 사람들은 궤변이라고 그의 책을 도중에 던져버리곤 하지만요. 바우는 그 책을 아주 좋아했어요.”

“좀 믿기 힘든 내용이 있지만 소재는 아주 재밌네요. 기계들이 잔뜩 들어오는 부분에서 그런 세상이 실제로 온 다는 게 실감하긴 어렵지만요”

“그건 이미 큰 도시에선 낯설지도 않은 얘긴걸요”

“에이, 촌뜨기라고 놀리진 마세요. 제가 그 정도로 숙맥은 아니에요”

둘은 불가에 앉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바우 부인께서는 원래 이름이 마릴이시죠?”

“네, 그대와 같은. 직접적으론 얘기하지 않았죠? 호호, 그 이름은 누가 지어주신 건가요?”

“이건.......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의 이름이에요. 같은 이름을 썼거든요.”


노파는 고개 숙인 숙녀의 등을 몇 번 쓸어내려주었다. 노파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노파의 손을 잡으려다 놓치고 말았다. 노파는 주방에 들려 엔빌마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다시 올라갔다. 지난 밤 늦게 잠에든 롬이 방에서 나와 아침에 소년이 정리한 자리에 앉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서 잠을 못 이루던 바우가 계단을 내려와 불가에 앉았다.  


“생각보다 얼마 안 걸렸네요.”

“그냥 잠시 머리에 쉴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죠,”

“하여튼 반가워요. 나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바우”

“당신은 마릴인가요?”

“말해 무엇 하겠나요.”

“이곳에 이상을 알아챘습니까?”

“약간은요? 사실 잘 모르네요. 아직”

“여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막는 무언가가 있어요.”

“당신이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던 그것 말인가요? 안 그래도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맨 처음 들어왔던 저 문을 다시 나가려던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 했어요. 그저 경계에서 의식을 잃고 말았죠.”

“아직 내가 밖으로 나가 본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믿기 힘든 말이네요. 사실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아까 문 앞에 서 있던 당신을 봤을 때 문 너머로 당신과 똑같이 베껴놓은 것과 같은 다른 사람을 봤어요. 그대로 거울에 비춘 것처럼 요. 하지만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졌죠. 내가 궁금한 건 대체 그게 뭐였냐는 거에요.”

“문 앞에 또 다른 내가 있었다고요?”

“말 한 그대로.”

“엔빌마는 문을 나섰을 때 나와 같이 시장까지 갔다고 했어요. 분명 난 여기 있었는데 나의 무엇은 떠나버렸다고 말이에요”

“솔직히 내 눈으로 앞에서 보기 전까진 이 이상 뭐라 할 수가 없겠네요.”

“그럼 날 따라와요”


바우는 마릴에게 우선 자신이 처음으로 증명하는 것을 지켜보면 그 다음으로 마릴의 차례가 이어지고 마지막 시도를 목격할 제 3의 인물을 데려다 놓고 보기로 설명했다. 문이 열리자 바우가 침묵을 깨고 발을 땠고, 정확히 문을 넘기 전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은 저번에 봤던 장면과 같았다. 마치 떠나간 바우의 영혼이 밖에서 기다리듯 또 하나의 그는 남겨진 그를 응시했다. 그제서야 팔짱을 낀 체 벽에 기대서 지켜보던 마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릴이 한 참을 흔들어 바우를 깨웠고 의식이 돌아온 바우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필요 없이 마릴도 떨면서 손을 밖으로 뻗었다. 마릴이 정신을 차렸을 땐 바우가 엔빌마를 데려와 옆에 서 있었고, 바우는 엔빌마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건네고 마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3>         


날은 바우가 이곳에 처음에 도착했던 그 날과 같이 칠흑으로 잠겼다. 먼저 정신을 차린 바우가 마릴을 흔들었고 둘은 서로의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할 뿐 결국 아무런 대화 없이 거실로 들어왔다. 거실엔 엔빌마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난로에 장착을 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늦게까지 남아 계시네요.”

“어르신께서 전날 부탁을 하고 가셨네. 아무쪼록 자신이 없을 동안 각별히 신경 좀 써 달라고 말이야.”

“집에 가족이 있지 않으세요?”

마릴은 대화를 들으며 낮에 자신이 보던 책을 모아 정리했다.

“일 잘하고 알뜰하게 살 것처럼 보여도 이래 뵈도 독신이지.”

“두 분이 그리 태평스럽게 안부나 물을 얘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마릴, 여기 불가에 와서 앉으세요. 밖에 오랫동안 있다 온 것 같은데 몸 좀 녹이면서 얘기해요”

“밖에 있었다고요?”

“바우가 낮에 다짜고짜 내게 와서 부탁을 했네. 이제 곧 자신과 마릴이 밖으로 나갈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이야. 사실 저번에 이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황당한 부탁이었지만 그 진지한 표정에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지.”

“과정은 됐어요! 그래서 당신이 목격한 것만 얘기해줘요. 분명 바우가 내 팔을 잡고 저 밖으로 끌어 당겼죠. 그때 당신은 무엇을 봤죠?”

“흥분하지 좀 말게. 자네가 설명한 그대로야. 자네 둘은 그렇게 밖으로 나갔네.”

“그리고요?”  

“목적은 모르겠으나, 그렇게 어디론가 향했지.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좀 더 지켜보다가 문을 다시 닫은 것뿐이었네.”

“그것뿐이라니......”

“이제는 내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자네들에게 묻고 싶네. 대체 무슨 문제 때문에 이러는 건가?”

“말해도 믿지 않겠지만 당신이 이 집에서 나가는 걸 봤던 그 누군가의 실체는 그때 이 집에 남아서 떠나지 못하고 속박 돼 있었어요.”

“바우, 그렇게 접근해서 안 될 것 같아요. 내가 물어봐야겠어요. 모두가 알다시피 기이하게도 이 집에는 현재 각각 세 명씩의 바우와 마릴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존재해요.  당신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죠?”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서로 다른 사람인데. 나이도 모습들도 제각기이지 않나?”

“잘 생각해봐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더군다나 이름이 같은 세 명의 사람. 뭔가 위화감을 느끼진 않으세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군. 자네들이 말한 이곳을 나갈 수 없는 이유가 그것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

“아직은 잘 몰라요. 하지만 무슨 이유가 있다면 분명 그 부분을 집고 넘어가야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뭐, 자네의 말이 맞다 그렇게 전제를 해 보지. 뭐, 나로서는 자네들이 나가지 못한다는 부분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이야. 나머지 바우와 마릴들은 자유롭게 들락날락 거리지 않나? 자네들의 기준에선 그들이 당연히 정상이란 말이지. 반대로, 다른 이들이 볼 땐 자네 둘은 역시 또한 출입이 가능한 사람들로 보이네. 하지만 자네들만 아니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란 거지”

“결국 그 말은 그런 뜻이네요.”

“그래, 자네들의 문제는 외부에서 해결할 수 없네. 무엇이 해결되지 못한다면 그 방법은 자네들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거야.”

“알았어요. 고마워요, 엔빌마.”

“표정을 보면 도움이 되지 못했단 걸 안다네. 미안하이.”


같은 시간, 바우는 지하로 내려와 통을 깔고 앉았으며 마릴은 계단 끝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릴 부인은 서재에서의 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갔다. 둘 중 먼저 몸을 일으킨 건 바우였다. 그는 자기 방으로 향하는 중 그 그림을 다시 한 번 흘깃하며 지나쳤고 앞 앉아 있던 마릴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바우는 방에 들어가서 초를 가지고 서재로 들어갔다. 멍하니 앞을 주시하던 그녀도 옷을 털고 일어나 그를 쫓았다.    

 

<4>     


“바우, 혹시 아래층에서 젊은 친구들을 본적 있나요?”

“물론입니다.”

“난 그 중 어린 마릴을 보고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그 바우가 나를 보는 것 같았소. 하지만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말이에요.”

“정말로, 혹시 정말로 지금 그 둘이 우리의 모습들이었던 게 아닐까요?”

“저들이 우리 과거라 말입니까? 터무니없는 소리로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그저 이것은 어떠한 영감일 뿐이니까.”

“아니, 완전히 잘 못된 말이 아닐지도 몰라요. 만약에 그렇다고 가정하면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제정신이 아닌 건 분명하군요. 별 도리도 없지만.”

“이미 받아들인 부분 아니던가요. 좋아요, 이 가정대로라면 지금 이 여관이라는 공간에는 마릴과 바우, 이렇게 두 명의 인간이 셋으로 분리된 시간으로 나뉘어져 나타나요. 즉, 지금을 현재라고 기준을 잡는다면 저들은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라는 거죠.”

“흥미롭군요.”

“지금 우리에게 ‘현재’라는 시간이 문제란 것이라면, 그리고 저 과거와 미래란 시간에서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의 벽을 허물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어느 쪽으로 접근할지 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네요.”

“어디로 할지 정한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생각해봐요. 당신 말대로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시간은 문제가 있어요. 그건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시간이 잘 못 됐던가. 아니면 현재에서 미래로 옮기는 시간에서 무슨 문제가 있다는 뜻이죠.”

“그거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네요.”

“네, 당연히 내가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중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뭐라고요? 그거야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에서 잘 못 됐다는 정리가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 아닌가요?”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지금 현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전부 과거의 행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접근하는 게 옳다고 보는데요?”

“아니요. 오히려 과거 따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우리 사람은 미래를 나아가는 데 있어서 순수하게 보지 못하게 되고 오염되는 것은 과거의 구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해결은 현재에서 미래로의 흐름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어요.”

“그거야말로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과거를 배반한 채 지금 서있을 수 있단 말인가요? 당신이 다녀간 길이 있기 때문에 방향이란 걸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 건가요?”

“천만해요. 길이라는 건 지금 이 순간 발생하는 거라고요. 과거에 내가 어떤 길을 다녀갔기 때문에 지금 내가 그 길에 있다는 말은 거짓이에요.”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건, 우리가 가진 문제는 완전히 공통이 될 수 없다는 거에요. 당신과 나는 달라요.”

“동감이에요. 같은 현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우리는 열려 있는 곳이 다른 모양이네요. 밤이 됐으니 생각을 정리하고 아침에 다시 얘기합시다.”


마릴이 먼저 자리를 떴고, 남겨진 바우는 정리된 여러 장의 그림에서 새 모양의 무엇을 집어 들었다. 그는 턱에 손을 괸 체로 보고 난 여태껏 하늘을 보면서 이런 새 따윈 본적도 없노라고 중얼거렸다.     

이전 03화 우주 먼지 여관 3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