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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스러운 곰 Jul 24. 2021

깨진 가면은 뜨지 않는다 5장

다시 교차.

<16>     


인간 하나의 열덩이를 몸에 품으셨고 그래서 나를 자기의 분신이라고 생각하시는 그분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구심점이었다. 그래서 그런 그녀가 내 스스로의 가치와 그 방향에서 나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을 때, 내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지금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였다. 그것은 그 당시 내게 몹시 거대한 좌절을 느끼게 했고 시간이 지나 내게 다음으로 든 생각은 그래도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자신이 누구에게 상당한 부분을 기인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과 실체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어떠한 것도 설사 그것이 기존의 자신일지라도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분노와 나는 앞으로 어떠한 인간이든 될 수 있겠다고 스스로 몰아 부친 뒤의 공허함이 남았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진정으로 그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를 더 이상 쫓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걸.. 


“자주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다신 보기 싫은 인간에게는 내가 대체 어떤 인상으로 남아야 할까. 내가 그와 어느 수준으로 긍정적 관계에서 끊어내야 할까. 이 정도?”

“마치 도망자다운 대답이군. 하지만 적당한 대답이야.”

“고맙군요. 월, 그래서 이제는 당신 손에 들려있는 결말을 알려주겠어요?”

“네 모든 우려의 중심이었던 대로, 혼란 속에서 놓지 않았던 희망이었던 대로, 바래왔던 희극의 결말대로다.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진 마. 그저 넌 스스로에게 주어진 역할을 마쳤을 뿐이야.”

“그래요. 그리고 이제 하나를 마쳤을 뿐이죠..”

“간섭은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서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사회의 본질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면 넌 이번과 같은 시험과 증명의 연속일 테지.”

“압니다. 아주 잘 알아요.”

그래, 중간 중간 잊어버리긴 했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터다.

“더욱이, 내게 있어서 박탈감은 숙명 같은 것이니까요.”

“네게는... 그렇지.” 


무엇을 따라가면서 과거에 이 다음이 뭐냐고 질문하는 것은, 둥글게 말려져 있는 카펫을 펴는 것과는 다르다. 펴기 전에 그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같지만 적어도 그것을 다시 말았다고 해서 무늬가 바뀌거나 하진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하지만 사슬을 끌고 여기까지 온 것은 너다. 축하한다. 이제는 정말로 네 족쇄를 끊으러 가봐”

유일하게 시간만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보는 세계와 생각하는 세계 사이에선 말로 설명하는 시점의 역설이 생긴다. 난 내게 무수히 쏟아지는 과거를 보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점에선 그것은 과거에 배반된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의 과거로 남아 버린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큰 바다의 일부가 되고 싶은 나였지만 결국 낯선 조류에도 자신을 실을 수 없었다.


“어허, 벌써 인사할 때가 온 거요? 난 이 날이 오리라 믿고 있었지. 리벨은 눈은 처음부터 한 곳만 보고 있었거든.”

“그래, 곧 그 잔상도 지워질 듯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공을 들인 만큼 지워지는 것도 꽤 번거로울 테지”

“그 말대로, 실로 많은 고심과 계산을 했을 것이고 어떤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일어나는 것도 있었을 것이오. 허나 그 모든 것은 리벨이라는 어떤 인간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소. 정말로 이전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거요? 아니면 일시적으로 상실된 것이요?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각자 존재하지만 어째서 따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소. 이해하기 어려운 병이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둘 중 무엇도 아닌 것 같아. 그냥 단순히 아니라고 단정 짓기에는 조만간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본인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묶이게 되는 것은, 결국 스스로도 그 가치에 부합하는 기준을 자신이 갖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오. 결국 인간이라면 그것에 이끌릴 수밖에 없지만 실제로 리벨은 거역했소. 마치 자신을 버린 것과 같이. 내 앞에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오. 한 때는 리벨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믿었소. 허나 이제는 나 자신조차 의심이 되기 시작했지 허허허”

“네 즐거운 설명을 듣는 것도 이제 곧 끝나겠지. 그 동안 고마웠다.”

“다른 이들과도 인사를 나눠야 하지 않겠소?”

“네 말대로 난 딱히 이곳에서 친구가 없는 것 같다. 정을 붙이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것을 거부해야만 했던 표상이었던 건지”

“그런데 전에 얘기하지 않았소? 그 저녁 내내 찾아다니던 친구 말이오.”

“너도 실은 전에 한 번 어스무리하게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름에 비가 왕창 쏟아지고 난 후 보수공사를 위해 쌓아둔 흙이 배수로를 막았던 날 있지? 그 날 저녁 모두 모여 있을 때 네가 내가 누구를 빤히 처다 본다 했잖아”

“기억하고 있소. 그래서 내가 지켜보고 있는 놈이 윗적이 아니냐고도 했잖소.”

“그때 내가 너희를 두고 따라갔던 놈이 내가 찾던 녀석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오? 허허”

“그날 유독 구름도 많았고 몇 보 사이에도 떨어지면 분간하기 힘든 밤이었으니 네가 잘 몰랐었을 수도 있지”

“내가 보기엔 따라 간다고 하기 보다는 계속 방황하는 것 같던데. 가다 멈추고, 또 가다 두리번거리고. 한동안 멈춰 서있다 또 가고. 그리고 어디가 아픈 마냥..”


내가 누구 얘기를 듣고 있는 거야?


“리벨 혹시 그 자가 자기 쪽도 아닌데 와서 화장실에서 만났다는 그 자요?

“그래, 기억하고 있구나. 너도 혹시 그의 얼굴을 본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이 뭐요?”

“허허, 웃기게도 아직도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재밌는 건 그도 나의 이름을 착각해서 다르게 부른다는 거지.”

“...혹시 여기 들어오기 전의 리벨을 기억하고 있소?

“사회에서 말이냐? 물론” 

“그저 지금의 자신을 토대로 찾아보고 있는 것 아니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사실 내가 그날 밤에 그 방향에서 보고 있던 것은 그 친구 분이라는 사람도 아니오. 이 건물 창문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그림자가 신경 쓰였던 거지. 난 그날 이후 그게 트레이스였다는 것을 알았소. 리벨에게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저번에 단 둘이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소.”

“중점을 모르겠군.”

“처음에는 그와 그날 밤의 리벨의 거동에 관해 얘기했소. 물론 나는 그것이 얼토당토 안한 헛소리라고 무시했소. 그래서 그 놈이 종종 리벨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내게 그 주제를 떠들러 왔을 땐 그가 이미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없음을 알았지.  그래서 나는 더욱 그를 의심 했었던 거요. 그가 지금 욕망하고 있는 것이, 리벨을 향하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그가 그 모든 소문의 중심이라 그리 확신했소.”

“난 그 놈 얘기하던 게 아닌데?”

“하지만 나도 그날 밤 리벨의 행동은 무언가 석연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오. 그래서 그가 ‘리벨이 스스로 망가트리려 한다. 그날 밤 혼자서 배회하며 하는 이상한 행동들을 너도 보지 않았던가?’ 라고 내게 캐물었을 때 솔직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소.” 



요새 몸의 여러 군데군데가 얼얼하고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어이구여긴가?’

그는 그러면 손으로 자기 귀를 후려갈기는가 하면주먹으로 자기 입을 세게 치고괴상하리라 만치 자기 무릎을 격하게 때려댔다.

이봐그만해괜찮아뭐 그리 심하게 해?’

이젠 나도 나를 모르게 돼버렸는데 어쩌겠나.’



“내가 그날 혼자?”

“여름 때 심한 더위로 이곳에서 피부병이 유행했을 때 리벨은 몸을 심하게 긁었소. 그래서 리벨이 우리 방으로 새로 배정되었지. 불결하고 사람이 많아 일부로라도 반대 편 화장실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월이 소장에게 한 보고를 통해 자주 씻게 하고 감염을 피하기 위해 내린 특별지시였소.”



오랜만이야 얼굴은 전보다 좋아 보이는군리벨요즘도 화장실은 잘 가고 있나?’

나는 그 정도의 일상생활 때문에 당신 만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누구 얘기를 듣고 있는 거지?


“오래전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리벨은 이곳에 생활이 적응이 되지 않아 괴로워 할 때에는, 혼자 2층에 올라가 창문에 기대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저 밖의 우리가 들어왔던 길을 보고 있었던 리벨이오. 고독할 때면 조용히 산책을 즐기며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지.”



그 녀석나도 딱히 친한 건 아니라 잘 모르는데여름 즈음에 괜히 서편 화장실을 두고 우리 쪽에 와서 쓴다던가아니면 창틀에 기대서 자주 바깥을 보고 있는 다던가아니면 혼자 생각에 잠겨 빙빙 걷는다던가.’  



“지금.. 너랑 대화하고 있는 거... 나.. 맞지?”

“나도 모르겠소.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나랑 동시간대에 나란히 서있을 수 있는 인물이오. 따라서 내가 그 동안 리벨을 통해서 들었던 그 친구는 내게 있어서는 과거의 망령이거나 그 조차 다시 망각되어버린 허상일지라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거요. 그럼, 나는 가봐야겠소. 일과 후에 봅시다.”    

 

<17>     


나는 두 세계를 번갈아 오가면서 내가 지니는 가치의 본질은 찾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무엇을 정립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배반이라 깨닫게 됐다. 그것은 내가 있는 세계든, 내 스스로 안의 세계든... 


자신은 계속해서 부서지고 만들어져도 그저 삶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풍화나 반작용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나를 만들고 형성하고 있던 가장 큰 잣대가 무너졌고, 덕분에 나는 내가 스스로 믿는 자신이 그 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한 낱 일시적인 거짓의 표상일 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레테(Lethe)가 어째서 기억을 없앤다는 뜻뿐만 아니라 진실을 은폐한다는 의미도 같이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월이 확실한 승계를 해주었네. 이제는 자네가 이곳을 나가는 순간부터 소속 상, 신분상으로도 더 이상 나의 관할이 아니네. 허나 사회로 넘어가는 그 사이 경계를 조심해야 할 거야. 다시 한 번 더 빠지게 된다면 다음에는 정말 기어서 올라 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네 하하하.” 


모두가 낮에 자리를 비우는 시간. 난 소장에게서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받은 종이 쪼가리를 들고 떠날 짐을 챙기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다만 그곳에는 무언가의 이끌림에 충실한 다른 이가 먼저 방문했던 모양이다.


“거기, 토스냐?”

“너, 아주 뾰족한 펜을 가지고 있네, 이거 아주 좋은 도구인 걸”


조금은 놀랄 줄 알았는데, 내 물건을 뒤지면서도 거리낌이 없군. 그가 이것저것을 한참 잡아대다가 이젠 내가 저지해야겠다가 생각했을 그 순간에 그는 내 공책을 집어 들었다.


“내게 뭔가를 기대하고 부러워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훔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냐?”

그의 비정상으로 상기된 표정, 절박한 몸짓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 장씩 넘기다 그제야 몸을 천천히 틀어 나와 눈을 맞추었다.

“이거 말이야, 지금 어디에 있지? 내게도 알려줘. 제발! 제발! 나도 이게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길쭉한 타원형, 갈라지고 깨진 무늬.

“왜 그것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것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미안하군. 나도 알려줄 수 없어서 말이야.”

“시치지 때지마! 서..설마.. 지금 네가 갖고 있나?”

“정말 내게 바라는 것도 많군. 창고부터 이제는 내 물건에, 내 물건까지. 졸졸졸 잘도 귀찮게 하는구나.”

“나. 난 봤어. 네가 거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다 봤다고!”

“마침 잘 되었군. 나도 떠나기 전 그와 인사하고 싶었는데. 그때 거기에 있었던 녀석 말이야. 혹시..”

“나도 너처럼 되고 싶었어, 이것봐봐!”

그는 팔을 한 쪽 걷고 이제는 깁스를 푼 다리와 신발도 벗어 보여주었다. 온갖 멍을 포함해서 일그러진 살집, 태운 자국, 찌르거나 뜯어낸 자국.

“토스의 말이 맞았군.”

“난 왜 너처럼 될 수 없지? 어째서?”

“그만 남에 것 손대고 그건 돌려줘. 그리고 그 녀석 본 적 없어? 그때 너 다음으로 내가 불려가고 난 다음에 너와 함께 둘이 같이 있었잖아.”

“그 다음이 아냐... 네 눈에 보이는 건 네가 올라가고 난 뒤의 모습이 아니란 말이야!! 그 잠깐 전에 우리가 대화하고 있던 순간이지. 나와 있었던 건 처음부터 쭉 계속 너였었다고! 이젠 제발 그만 좀 해. 어지간히 자신을 객관화 시켜서 분리해내지마. 모두 끝났잖아. 이젠 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허. 허. 허? 설마? 너 이제는 정말 스스로를 멈추려는 거야? 그와의 간격을 좁히려고? 네 안의 시계들은 곧 모두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함께 깨져 버리겠군. 헤헤헤 미쳤어. 미친 거야!!”


그저 멍하니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지금 방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인지 아까 나가버린 것인지 너무 헷갈렸다.


“안녕히 가시오. 그 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소. 리벨이 있는 동안에 같이 나눈 대화가 즐거웠기에 분명 난 섭섭함을 느낄 것이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나도 비슷한 심정일거야”

“벌써 밖이 깜깜한데 누가 마중 오는 것도 없이 혼자 나가는 거요? 조금 전에 가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 것 같은데”

“음, 이제는 그럴 필요는 없으나 조금 더 확인해 볼 것이 있으니 저 밖에서 시험을 좀 더 준비해 두었다고 하더군.”   

“그럼 그들이 앞으로 리벨의 길동무가 되겠군요.”

“아니, 이미 물결이 길을 지웠다.”


<18>     


간만에 맞는 내음. 부드러운 모래. 그 시작을 알 수 없고 부서져 사라지는 파도. 어둠과 함께 보이지 않는 그 끝은 공허함과 함께 미궁으로 흘러, 흘러. 점점 서서히 그곳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내 뒤에 있지? 이젠 보이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응, 넌 내 코앞까지 와 있어.”

“네가 갖고 있다는 그 보물, 그게 원래부터 네 것이든 아니면 빼앗고 돌려주지 않은 것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지금도 갖고 있지?”

“과연, 미학으로 형상화된 그것은 시간과 장소의 틈에서 잃어버리지 않지. 비록 낡고 부서지는 건 막을 수 없지만 말이야”

“이젠 내게 그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어. 바로 묻지”

“그래”

“그 보물이라는 게 혹시... 거울이야?”

“마치 무엇을 비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군. 분명 무엇을 담아내긴 했었지”

“했었다? 수많은 표상을 가능하게 하고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그것. 하지만 결국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점점 더 감추고 말더군.”

“그럴 수밖에,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본판에 꿰매고 덧발라줘야 하니까. 하지만 ‘감춘다.’라는 미련도 이제 곧 끝이 날거야.”

“어찌.. 그 치명적인 것을 난 여태 벗을 수 없었는지..”

“두려웠던 거야. 가면을 완전히 벗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까.”

“그래. 나의 의식은 과거를 붙잡고 있느라 현재에 없어. 그런데도 현재란 시간의 물들어버린 ‘가치란 이름의 가면’이, 깨지고 갈라지고 매번 벗겨져도 정작 나는 완전히 내려놓을 용기가 없었어. 그게 설령 과거에 존재해온 스스로에 대한 배반인 걸 알면서도...” 

“덕분에 나도 이렇게 같이 존재할 수 있었지만 말이야.”

“곧, 내 입을 통해서 말이 나오지 않게 되고 말 거야. 마지막 질문이 남았어. 너와 나의 증명의 과업을 통해 나는 ..우리는... 망각의 끝에 어떤 최후를 맞게 되지? 마주할 수 있는 건가?”

“망각의 앞에 결말이냐, 기대란 것은 이미 우문이지. 넌 계속 그래왔듯이 날 영영 잃어버리게 될 거야.”

“.....”

“허어, 벌써? 뭐, 그래도 찾지 못함에 안타까워 말아. 그리 괴로워하며 손을 내젓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 

“이미 듣질 못하는 군, 벌써 귀와 눈높이까지 왜곡되고 말았나. 어이, 마지막으로 몸부림치려고 해도 소용없어.”

“.....”

“곧 네 어리석음이 머리 꼭대기까지 지배할 것 같으니 마지막 대답은 해주지. 원한다면 돌아가서 그것을 쫓아. 네 모든 집중과 집념을 다해서 말이야. 그럼 그것들은 네게 새로운 실마리와 조언을 주겠지. 그럼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될 거야. 그럼 그때서야 손을 위로 올리고 크게 흔들면서 소리치는 거야!”

“.....”

“아아! 나의 리테(Le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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