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ken game
-주방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인데 제가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치킨은 다시 튀겨서 금방 갖다 드릴게요. 이것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예예 들어가세요.
9월 1일 저녁 5시 45분
전화기 너머로 보이지 않는 상대방을 향해 연신 굽신대던 사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언성을 높였다.
-아줌마! 닭을 어떻게 튀겼길래 털이 나와요!
-예?
-5시 14분, 동북아파트 1203호, 지금 닭에서 털이 나왔다고 난리예요. 어떡할겁니까?
-튀길 때 그런거 없었는데요…?
-됐고. 한마리 다시 튀겨요. 빨리!
닭이 새로 튀겨지는 동안, 사장은 배달앱에 남긴 리뷰를 찬찬히 살폈다. 비닐장갑 낀 손에 들린 정체모를 깃털 하나. 닉네임 <배고픈집순이>는 인증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겼다.
치킨이 너무 늦어서 닭털부터 뽑아 오나 했는데, 진짜로 털 뽑다말고 튀겼나봄?ㅋ
스테인리스 집게로 튀김망을 때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려왔다. 평소보다 큰 소리가, 평소보다 오래 지속되는 바람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주방 아줌마는 혼잣말이라기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조선족 억양이 섞인 말투엔 억울함이 가득했다.
-닭털을 내가 뽑았나? 닭도 공장에서 와. 반죽도 공장에서 와. 시키는 대로 튀긴 죄 밖에 없는데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지랄이.
-아줌마, 뭐라 그랬어요 지금?
-…
이튿날, <배고픈집순이>의 리뷰는 ‘닭털치킨’이란 자극적인 단어로 재생산 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인터넷 언론들은 피 냄새를 맡은 상어떼처럼 달려들어 연일 지독하게 기사를 써댔다.
<닭털치킨, 선 넘은 배달음식 위생>
<닭털치킨 논란, 마왕치킨 묵묵부답>
<마왕치킨 닭털 논란, 조류 인플루엔자 위험은?>
마왕치킨 홍보팀엔 비상이 걸렸다. <바른식탁 활동연대>, <먹거리 안전협회>, <바른맘 연합회> 등 세상의 온갖 단체에서 항의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했던 홍보담당 조상무는 김과장을 방으로 호출했다.
-일단 우리 쪽 공장에서 이물질 나오는 거 없는지 전수조사 하고. 동북점 가서 원인 규명해와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닭털이 들어가게 된 건지. 명명백백하게.
-예, 그… 말씀하신 사과문은 어떻게 할까요?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사과문을 쓰던 말던 할거 아닙니까. 빨리 나가봐요. 급해요 급해.
김 과장은 곧장 동북점으로 향했다. 사장은 하룻밤 사이 믿는 구석이라도 생겼는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어제와는 달리 꽤 호전적인 태도로 김과장이 먼저 입을 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 대체 위생 관리를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까. 사람 털만 나와도 난리가 나는 세상인데 닭털이 왠말이예요. 닭털이.
-김과장, 말이 너무 심하네… 이게 어떻게 우리 탓이야? 우린 납품 받은 닭 매뉴얼 대로 튀긴 죄 밖에 없다고. 본사 쪽 피해 줄이려고 우리한테만 덤탱이 씌우려는 거 아니야 지금!
-공장 쪽은 벌써 전수조사 들어갔습니다. 그거랑은 별개로… 튀길 때 잘 보고 튀기셨어야죠. 실수로 닭 대가리 들어가면 대가리까지 같이 튀길겁니까? 공장에서 털이 나온다고 한들 사장님은 책임 없는 줄 알아요?
사장이 준비한 회심의 일격은 김과장의 기세에 조금의 흠집도 내지 못한 채 허탈하게 막을 내렸다. 전세는 역전됐고, 아까와 같은 호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화살은 애꿎은 주방 아줌마를 향했다. 해탈한 표정으로 리뷰 속의 사진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녀에게 사장은 보란듯이 호통을 쳤다.
-아줌마! 그러게 잘 좀 보고 튀기지 그랬어요!
-김과장, 우리 주방 아줌마가 일이 서툴러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인데. 내가 단단히 주의를 줄게. 응?
-‘주의’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에요 지금. 원인규명해서 책임을 물겠다는 게 본사 방침이라구요.
사장은 김과장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주방 아줌마만 들쑤셨다. 휴머니즘에 기대어 불리해진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해보려는 심산이었다.
-아줌마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드려요, 얼른.
-사장님…
-뭐해요. 얼른 사과 안 드리고?
-사장님…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깃털이 멀쩡하잖아요. 튀길 때 같이 들어갔으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없는데…
김 과장은 조 상무의 방 문을 두드렸다. 조 상무는 김과장 쪽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사 앞 광장엔 <바른식탁 활동연대>와 <바른맘 연합회>가 ‘악덕기업 마왕치킨 물러가라’, ‘아이들 먹는 치킨에 깃털이 왠말이냐’ 따위의 플랜카드를 걸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뭐 좀 나왔어요?
-열심히 조사 중에 있구요. 저희가 하나 알아낸 게 있습니다.
-뭔데요?
-사진을 보니까 깃털이 깨끗하더라구요?
-깨끗하면 뭐… 먹어도 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튀길 때 들어갔으면 깃털에 손상이 있거나, 하다못해 튀김가루라도 묻어야 되거든요? 근데 이게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단 말이죠. 적어도 주방이나 공장에서 들어간 건 아니지 싶어요…
-그럼 어디서 들어갔단 얘기에요.
-글쎄 그건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아마도 손님이 넣어두고 쇼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요즘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잖아요.
-과장님…
-예?
-우리 생각이란 걸 좀 합시다… 그 손님, 돈으로 받아갔어요, 제품으로 받아갔어요?
-닭 한마리 다시 튀겨서 나갔죠.
-과장님 같으면 닭 한마리 더 받자고 그런 사진 올릴거예요?
-…
-밖에 좀 보세요. 저 시위대를 보고도 사태 파악이 안돼요 지금?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손님 심기 건드리는 짓은 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예.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나가요. 나가. 누군지 찾기 전엔 들어올 생각하지 말고.
김과장은 다시 동북점을 찾았다. 주방 아줌마는 술안주로 제공되는 공짜 뻥튀기 안주를 퍼왔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어느새 세 사람 사이엔 같은 배를 탄 듯한 친밀감마저 느껴졌다.
-튀길 때 들어간 것도 아니야. 손님도 아니야. 그러면 배달 나가서 손님이 받기 전까지, 그 15분 사이에 범인이 있단 얘긴데…
현관문에 달린 종이 울리고 헬멧을 쓴 배달원이 들어왔다. 세 사람의 눈이 일제히 배달원을 향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 팔토시 안에 감춰진 문신까지. 김과장은 이거다 싶었는지 사장을 향해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사장은 방금까지의 대화를 감추고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배달 아저씨, 여기 잠깐만 앉아봐요.
-왜요?
-엊그제 동북아파트 배달… 별일 없었죠?
-네. 왜요?
-뭐 중간에 박스를 열었다거나 그런 일은…?
-뭔소리예요?
분위기를 읽은 김과장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능성을 점검해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에이~ 사장님도 참… 설마 우리 학생이 그랬겠어요. 아니죠 학생?
-저 학생 아닌데요? 그리고 박스에 스티커 붙여서 나가잖아요. 정 궁금하면 손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시든가요. 제가 대신 물어봐줘요? 예? 지금 전화할까요?
배달원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손님에게 전화가 간다면 일이 더 커질 것이 분명했기에, 김과장에겐 그 모습이 꽤나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아니아니. 미안해요 학생.
-바빠 죽겠는데 짜증나게 진짜… 아저씨 빨리 치킨이나 줘요. 배달가게.
김 과장은 별다른 소득 없이 회사로 돌아왔다. 본사 앞의 시위대는 어제보다 더 커진 규모였고, 못보던 방송사 카메라까지 몇 대 와 있었다.
-주방 아줌마도 아니고, 공장도 아니고, 배달부도 아니면 누구 잘못이란 말입니까? 내 잘못이예요? 내 잘못이예요?
조상무는 서류철로 김과장의 명치를 쿡쿡 찔렀다.
-사장님한테 ‘치킨에서 깃털이 나온 건 사실인데, 그 깃털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보고 할까요?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긴 한데. 현재로썬 원인이 불분명하다… 이렇게 밖에는…
-아니 그럼, 깃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했단 말이예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뭘 그렇게 정성스럽게 해요.
9월 1일 저녁 5시 40분
선선한 가을 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었다. 동북아파트 옥상에선 대청소가 한창이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회백색 깃털 하나가 1203호의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