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도 하지?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 비가 나에게 섣부른 안부를 물어왔어.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다가왔을까? 짐작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야. 나, 지금부터 슬슬 발동을 걸고 할 일 할 테니까 너도 게으름 피우지 마! 하면서 기습적으로 머리를 들이밀더라고. 그러더니 창틀에 걸터앉기도 하고 현관에 발을 들여놓기도 하고 급기야는 좁은 단칸방에도 들어오려는 거야.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날은 이미 개었고 하늘은 말갰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누군가 물어오는 듯 했지. 장마가 그쳤으니 더위는 기승을 부릴테고, 나는 이 빌어먹을 옥탑방에서 벌겋게 익어갈수도 있겠어. 그나저나 이 녀석은 아직 바다에 당도하지 못했을테지.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을거야.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만 기억하자, 다시 올라갈 이유를 찾자. 완벽한 때를 기다리자. 그리고 마음의 고요를 즐기라. 한참을 되내었어.
1996년 여름이 장맛비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