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인 친구 #4

진석은 전신거울로 자신의 나체를 바라본다. 웬만한 여자보다 큰 가슴에 희미하게 선이 잡힌 복근, 딱 벌어진 어깨와 알이 올라온 허벅지에 스스로 만족감을 표한다. 성기가 좀 더 크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를 사로잡는다. 바지 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내 입을 맞춘다. 네가 없었다면 종착역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라. 종착역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라 진석은 몇 번이고 그 앞에서 손을 모아 감사를 드린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그침과 동시에 핸드폰이 울린다. ‘이런 씨.......’ 진석은 뒷말을 넣고 문밖으로 나간다. 비상계단으로 내려온 후 다시 핸드폰 액정을 바라본다. ‘소민♡’ 이 년은 항상 분위기를 못 맞춘다니까. 그는 구석을 향한 뒤 초록색 전화기에 검지를 가져다 댄다.


-저기, 내가 지금 좀 바빠, 그러니까.......

쿡쿡쿡.......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웃음소리. 진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죽여 말한다.

-너 누구야?

-내가 누군지 까먹은 거야? 실망인데?


발음이 어설프기 짝이 없다. 외국인? 내가 아는 외국인이라곤 원어민 강사 폴이 전부인데? 진석은 살짝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대체 누구야, 너?

-내가 누구냐고? 너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사람! 너 때문에 사는 걸 포기한 사람이다!


뭔데 지랄이지?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돈이다.


-지금부터 1시간 내로 **대학교 박물관으로 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와. 아니면 이년 손가락을 잘라버릴 거야. 열 개 전부 잘라버릴 거라고!


전화는 끊어졌다. 진석은 잠시 벽을 보고 생각했다. 이건 미친놈의 망상인가. 아니면 실제상황인가. 내가 누구한테 피해를 끼쳤나. 인생을 망쳤다니. 떠오르지 않는다, 전혀. 특히 외국인이라니. 외국인이 맞긴 한가. 음성변조 기계가 없어서 자기 나름대로 변조한다는 게 이상하게 된 건 아닐까. 아는 외국인 친구라곤 전혀 없다. 프랑스어학과지만 프랑스에서 온 교환학생과는 한 마디 대화도 나눠본 적 없다. 생각의 통로는 잠시 샛길로 빠진다. 효림이는 샤워를 끝냈겠지? 효림이의 알몸은 어떨까. 탄력이 넘칠 거야. 무용학과니까 당연하겠지. 오늘이 아니면 그 애를 안을 기회가 또 있을까. 애매모호하게 기회를 넘겼다가 감정에 흠집을 내는 게 아닐까.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사라질지도 몰라. 콘돔의 신이시여, 내게 답을 주소서! 이내 발걸음은 결론에서 걸음을 멈춘다. 가만 있자,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일지 몰라. 녀석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 알면 소민이로 협박을 했겠어? 그리고 이 협박, 어설프기 짝이 없잖아. 진짜 복수할 마음이 있다면 날 미행해서 여기 모텔로 쳐들어 왔겠지. 어쩌면 장난일지도 모른다. 그래, 소민이가 관심 받고 싶어서 이러는지도 몰라. 혹시 미팅 문제를 알고 이런 술수를 부린 건 아닐까. 그는 112를 누르려다 손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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