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교헤이가 집에 돌아온 건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대학을 위해 북경을 향한 이후 집에 온 적이 없었다.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편지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영원히 부모를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누나의 죽음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다시 차갑게 식은 눈동자와 마주하고야 말았다.
집안 분위기라는 게 그랬다. 현실주의를 표방한 염세주의.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할 거 없는 집이었지만 부모의 입에서는 불만과 불평, 비관적인 말만 주구장창 나왔고 사랑 따윈 기대하기 힘들었다. 스가 교헤이는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19년 동안 타인이 되어 침대에 누웠다. 시니컬한 아침 인사와 조소가 섞인 대화, 지독하게 약점만 파고드는 태도는 그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헤이는 담임교사와 이 문제를 두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담임은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모두 교헤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 일본을 떠나는 건 어떠니?
담임은 한국이나 중국으로 대학 진학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또는 대학진학 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국가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교헤이는 방과 후 동아리 활동도 포기한 채 교실에 남아 한국어와 중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담임교사의 컴퓨터를 빌려 해외유학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였다. 그는 중국으로 가고 싶었다. 인종적으로 다른 나라는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만 다르다는 게 눈에 띄는 게 달갑지 않았다. 한국은 너무 작고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잡으러 올 수 있을 거 같았다. 반면 중국은 작성하고 숨으면 절대 찾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누나를 죽인 건 부모님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날 데려오기 위해 죽였을 것이라. 교헤이는 두 다리를 벌벌 떨며 영정사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