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인 친구 #10

김진석은 공항에서 깜짝 놀랐다. 자신과 함께 중국어 속성과정을 듣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완전히 끝나고 2주 정도 지난 후 출발하기로 했는데 이 사이에 신청자 대부분이 사정이 생겨 못 오게 되었다고 한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탈락자들 중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학생들을 급하게 연락해 인원을 꾸렸다. 그들 대부분이 중국어학과였기 때문에 진석은 꿔놓은 보릿자루처럼 혼자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들에게 밴드부 따위는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단단하게 뭉친 집단은 공간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중국어 수업시간에는 악당 취급을 받았다. 맥을 끊는다는 의미로 맥커터라는 별명도 얻었다. 잘 진행되던 수업은 진석 차례가 되면 잠시 멈추었다. 그의 중국어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고 발음도 엉망이었다. 그보다 나이가 어린 중국어 교사는 의아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너 여기 왜 왔어? 너 왜 중국말 하나도 못해?


아주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말이다.


중국어학과 학생들은 노래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샤워 중에 노래를 할 때면 샤워 칸 문을 열고 조용히 해달라며 미간이 찌푸려진 표정으로 말했다. 가까운 타국에 와서 자존감은 뚝 떨어졌다. 다툼의 발생은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원인은 핸드폰이었다. 2G밖에 되지 않는 건 물론 데이터의 용량도 원래 말했던 용량보다 훨씬 작았다. 진석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이 대학교에 오기 전 학교 내 핸드폰 가게에서 유심을 샀을 때 문제가 많았다는 글을 보았다. 하지만 중국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중문과 고학번 학생들에게 모두 맡겼다. 그들은 자기들도 당했다며 짜증을 냈지만 그게 다였다. 방마다 무선공유기가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자며 달래는 선으로 끝을 냈다.


-하, 씨발 새끼들, 짱개 말 좀 할 줄 아는 게 벼슬이다, 아주.


주변과 시선이 마주치고서야 깨달았다. 괜한 말을 했구나. 그들 사이의 유대는 진석보다 끈끈했고 핸드폰 문제 따위는 해석이고 음식 주문이고 중문과 학생들의 도움에 비할 때 귓불 뒤에 난 뾰두라지 같은 문제였다.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해 침대에 누워 씩씩거렸다. 누구 하나 잡아서 방이 붉게 물들 만큼 패주고 싶었다. 그 대상이 재수 없게 교헤이가 되어버렸다.


-야, 너 한국말 못해? 못 하냐고? 이 새끼 완전 깡통이네 이거.


사람보고 왜 깡통이라는 거지? 교헤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주먹이 날아와 배를 내리칠 때까지 그는 멍하니 진석을 바라만 보았다. 진석은 교헤이를 침대 위로 집어던졌다. 이불을 뒤집어씌우고는 주먹질을 했다.

-내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거든? 그러니까 좀 쳐 맞자.


일본인은 피가 나지 않게 배와 등, 엉덩이와 허벅지만 골라 때리는 이 남자의 기술에 감탄하면서 고통에 숨을 헐떡거렸다. 혹시 이 녀석, 누나가 보낸 악마가 아닐까. 누나의 분노가 이 남자를 통해 전해진 게 아닐까. 차라리 이렇게 맞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는 팔과 다리를 풀고 힘을 빼버렸다. 몇 대 때리던 한국인은 화가 풀렸는지 2층 침대로 올라갔다. 씩씩거리던 그는 영어로 말했다.


-내가 말이지, 여기로 어학연수를 왔어요. 그래서 너랑 앞으로 2주가량을 같이 보낼 거다. 요즘 분노 게이지가 꽉 차서 까불면 죽여 버리는 수가 있어요. 알겠니?


숨을 고르던 교헤이에게 베개가 날아왔다.


-빨리 빨리 대답해라, 새끼야. 알겠냐?

-알, 알았스무니다.


진석은 침대 아래로 뛰어내리며 교헤이의 등을 걷어찼다.


-한국말 할 줄 알잖아, 씨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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